美 앵커리지, 열돔 현상에 산불연기 경보
印, 50도 넘는 폭염에 이틀간 70여명 숨져
EU, 일찍 온 더위에 6월 평균기온 갈아치워
전문가들 "지구온난화로 인한 현상"
"기후변화 늦대응땐 50도로 치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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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경기·강원 일부 등 중부지방에 올해 들어 첫 폭염경보가 내려진 5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의 모습. 열화상 이미지에서는 높은 온도는 붉은 색으로, 낮은 온도는 푸른색으로 표시된다. (사진=연합) |
올해 들어 처음으로 서울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 폭염경보가 발령된 가운데 극한의 고온 날씨가 지구촌 곳곳을 강타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유럽에서는 지난달 말 40도를 넘는 이른 폭염으로 6월 평균기온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북극해와 맞닿은 알래스카마저도 최근 30도가 넘는 기록적인 고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심지어 인도는 50도를 넘나드는 ‘살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100여명이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등 곳곳에서 폭염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폭염은 다른 기상재해들과 달리 건물이 무너지거나 산사태가 발생하는 등 대규모 사건이 발생하진 않는다. 그러나 다른 재해들보다 사망자 수가 유독 많아 일명 ‘침묵의 살인자’라 불린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994년 대폭염 당시 전국 사망자 수는 무려 3384명으로 역대 기상재해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했다.
극악의 무더위로 불렸던 2003년 여름에는 프랑스에서 1만5000명이 폭염으로 사망하고 유럽 전역에서 7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지난 2010년에는 러시아와 시베리아 전역을 습격한 대폭염으로 러시아 전국에서 5만6000여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지역에서 만명 단위로 사람이 죽은 것은 폭염피해 외에 없다.
이처럼 무더위의 치사율이 유독 높은 것은 폭염은 당뇨병과 고혈압, 신장병 등 만성질환자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당뇨병 환자가 뜨거운 외부활동과 차가운 실내 환경에 교대로 노출되면 체온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고, 열사병 발생률이 높아진다. 또한 고혈압 환자는 폭염으로 땀이 많이 나면 몸에서 수분과 염분이 빠져나가 혈압 변화가 더욱 커진다. 수분 조절 능력이 악화된 신장병 환자는 수분 손실로 인해 콩팥으로 가는 혈류가 감소, 급성 신부전이 발생할 수 있다.
◇ ‘동토의 땅’ 알래스카, 30도 넘어 역대 최고치 기록에 산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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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한 알래스카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 나선 주민들. 사진은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데롱 호수(사진=AP/연합) |
최근 폭염으로 신음하는 대표적인 지역은 ‘동토의 땅’ 미국 알래스카주의 최대도시 앵커리지다. 이 지역의 기온은 기상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미 공영라디오 방송 NPR은 지난 4일 오후(현지시간) 앵커리지 낮 기온이 화씨 90도(섭씨 32.2도)까지 치솟았다고 공식 보도했다. 이는 알래스카에서 1952년부터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역대 최고기온이다.
종전 최고기온은 1969년 6월 14일에 기록된 화씨 85도(섭씨 29.4도)로, 50년 만에 최고기온 기록을 다시 썼다. 미 국립기상청(NWS)에 따르면 앵커리지의 6월 평균 기온은 화씨 60.5도(섭씨 15.8도)로 평년보다 화씨로 5도 이상 높았다. 앵커리지는 16개월 연속 평년 이상 기온을 기록하며 고온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알래스카주의 다른 도시들도 폭염에 휩싸였다. 케나이는 4일 오후 화씨 88도(섭씨 31.1도)를 찍었고 킹새먼도 화씨 89도(섭씨 31.7도)를 기록했다.
폭염의 원인은 북극권에 가까운 주(州) 상공을 덮고 있는 고기압이 촉발한 거대 ‘열돔’(뜨거운 공기가 지면에 갇히는 상태) 현상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알래스카주의 주택들은 대부분 여름보다 겨울 날씨를 더 잘 견디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에 고온의 ‘여름 나기’가 더욱 힘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추위를 견디는 데 익숙한 알래스카 주민들 또한 이례적인 폭염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대학의 브라이언 브렛슈나이더 기후 연구원은 "알래스카는 여름 주(州)가 아니라 겨울 주여서 주택들도 온기를 집 내부에 잘 유지하도록 지어졌다"며 "게다가 에어컨도 없기 때문에 밤 시간에 열기를 식히는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알래스카에서는 최근 이상 폭염으로 산불이 발생하고 빙하가 녹아 앵커리지 등의 대도시에서는 산불로 인한 연기 경보가 발령됐다. NWS는 노약자와 병자가 실내에 머물고 일반인도 장시간 야외활동을 금지하는 스모크(연기) 경보를 발령했다. 스모크 경보를 발령한 이유는 케나이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 남쪽 스완레이크에서 산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릭 소먼 알래스카 기후 평가 및 정책 센터 과학자는 "전체적으로 알래스카가 기록적으로 따뜻한 봄 날씨를 보인데 이어 앵커리지가 6월에 기록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산불이 나기 좋은 여건이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국립기상청은 또 빙하가 녹고 설산의 눈이 녹아 알래스카 남부 및 중앙 일대에 강과 개천이 불어났고, 이로 인해 침수 위험도 높아졌다고 밝혔다.
◇ 50도 넘나드는 ‘살인폭염’에 인도서 100명 이상의 사망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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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일부 지역에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더워지고 있나?'라는 제목으로 인도폭염을 조명한 미국 CNN.(사진=CNN 화면캡쳐) |
인도에서는 섭씨 50도를 웃도는 ‘살인 폭염’이 북부·중부·서부를 덮치면서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미국 CNN은 ‘인도의 일부 지역에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더워지고 있나?’라는 제목으로 인도의 극심한 무더위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인도 수도 뉴델리의 6월 낮 최고기온이 48도를 기록했고, 라자스탄의 사막 도시 추루는 최고 기온이 50.6도까지 치솟았다. 또 마하라슈트라, 마디아프라데시, 펀자브, 하리아나,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주요 도시 기온도 45도 이상을 기록했다. 특히 비하르주에서는 지난 6월 15∼16일 이틀 동안 70명 이상이 열사병으로 숨졌다.
일반적으로 인도는 3월에서 7월 사이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이후 장마가 시작되면 폭염도 다소 진정되는 추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고온이 지속되는 날이 더 자주, 길어졌으며 이에 따른 피해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10년 인도 전역에서 발생한 폭염은 21건에 불과했지만, 작년에는 무려 484건으로 급증했다.
인도 정부는 도시별로 평균기온보다 4.5도 이상 높은 상태가 이틀 이상 이어지면 폭염을 선포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인도를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국가 중 하나로 꼽았다. 또한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되면 ‘생존 한계’를 초과하는 지역이 전 세계에 크게 늘 것이란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 중에는 인도 북동부의 초타 나그퍼 플래토(Chota Nagpur Plateau) 고원도 포함됐다.
MIT 연구진은 ‘습구온도’(wet-bulb temperature)가 섭씨 35도에 이르면 땀을 통해 몸을 식히는 것이 불가능해 건강한 사람조차 6시간 이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습구온도는 온도계를 증류수에 적신 상태에서 측정하는 기온으로, 일반적으로 쓰이는 건구온도와 다르다.
갠지스강 계곡과 인도 북동부·동부 해안, 스리랑카 북부, 파키스탄의 인더스 계곡 등 남아시아 많은 지역 역시 사람이 살기 힘든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연구진 중 한 명은 "우리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온실가스를 계속 생산하면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 중 하나인 인도는 인간의 열 허용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유럽대륙의 6월, 관측 사상 가장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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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측 사상 가장 더운 6월을 보낸 유럽(사진=AP/연합) |
알래스카, 인도에 이어 유럽대륙에서도 최근 이례적으로 일찍 찾아온 ‘찜통더위’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유럽의 지난달 평균 기온은 역대 6월 기온으로는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연합(EU)의 지구 관측 프로그램인 ‘코페르니쿠스’에 따르면 지난달 유럽대륙의 평균기온은 6월 기준 역대 최고였던 1999년 기록을 1도가량 웃돌았다.
유럽대륙은 특히 6월 말 이례적으로 일찍 찾아온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일사병으로 숨지거나 더위를 피해 물놀이를 하다 익사하는 등 인명 피해가 속출했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에는 최근 40도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인 기록적 고온 현상이 수일간 지속됐다.
프랑스 남동부의 갈라르그 그 몽퇴의 경우 지난달 28일 수은주가 기상 관측 사상 최고인 45.9도를 기록했고, 파리 일대 50여개 학교가 휴교했다. 지난 27일과 28일 치러질 예정이었던 전국 고등학교 학력고사도 연기됐다.
독일 코셴 지역은 지난달 29일 38.6도까지 오르며 독일의 6월 최고기온 기록을 갈아치운데 이어 독일 아우토반 일부 구간 도로가 녹아내리면서 속도제한 조치가 발동됐다. 아우토반은 평소 속도제한이 없지만, 땡볕에 일부 구간 도로 표면이 녹아내리면서 사고를 막기 위해 시속을 96km로 제한했다.
무더위에 강한 바람까지 분 스페인에선 대형 산불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5.5배에 달하는 1600헥타르의 산림이 소실되는 피해를 봤고 이탈리아 역시 40도에 안팎의 더위로 로마, 피렌체, 페루자 등 주요 도시에서 최고단계인 ‘적색경보’가 내려졌다. 밀라노 중앙역에서는 72세 루마니아 걸인 남성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당국은 더위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찜통더위는 표면적으로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공기가 북상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유럽 기상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근본 원인으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현상을 지목했다.
기상학자들은 특히 2015년 파리 기후 협약에 따라 지구촌의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앞으로 이러한 폭염이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분석했다.
옥스포드대학의 환경변화연구소 부국장인 프리데리케 오토 박사는 "유럽의 열선은 인간이 만든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극한 상황 중 하나"라며 "남부 유럽에서 열파의 가능성은 산업화 이전보다 10배나 커 앞으로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유럽의 폭염과 관련해 기후변화 영향인지는 단정하기 어려우나 온실가스 증가와 극단적인 기온 변화가 일치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회성 기후변화협의체(IPCC) 의장은 "폭염이나 한파 한 건 한 건이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평균적으로 지구의 온도가 오르다보니 폭염이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은 커졌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더 나아가 기후변화로 이번과 같은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할 확률이 최소 5배 높아졌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프랑스국립과학원(CNRS) 선임과학자인 로베르 보타르는 "우리가 경험한 폭염이 금세기 중반에는 일반적인 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기후변화 조치가 조속히 실행되지 않는다면 금세기 말에는 수은주가 50도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면서 "이번에 프랑스에서 수립된 45.9도라는 최고 기온 기록은 이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신호"라고 덧붙였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