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 밑 또 지하실'...국제유가, 30달러대도 붕괴 "바닥 아직"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3.17 13:57

원유시장도 코로나 팬데믹 후폭풍
WTI 28.7달러로 2016년 이후 최저
미 전략비축유 매입도 하락 못막아
사우디-러 '유가전쟁'도 하방압력
내달부터 증산시 유가 추가하락 불가피

▲(사진=연합)


국제유가가 10% 가량 폭락하면서 4년 만에 배럴당 30달러선이 무너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글로벌 경제는 물론 금융시장에 직격탄을 가하면서 원유시장도 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와의 ‘유가 전쟁’이 전면전에 돌입할 것이란 소식도 국제유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바닥을 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진단하면서 추가하락을 예고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올 하반기부터 원유시장의 안정화가 찾아올 수 있다고 전망도 나온다.


◇ "30달러선 무너졌다"…원유시장 공급·수요 양방 타격

1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9.6%(3.03달러) 하락한 28.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16년 최저 수준이며 WTI는 이날을 기점으로 배럴당 30달러선이 무너졌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5월물 브렌트유 역시 배럴당 11.31%(3.8달러) 미끄러진 30.05달러를 기록했다.

현재 원유시장은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양방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미국 최대 에너지 투자은행 시몬스 에너지의 피어스 하몬드 애널리스트는 "원유수요는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으로 급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면서 세계 각국들 사이에 이동이 제한되자 원유수요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에서 환자수가 급속도로 늘어나자 각국 정상들은 "집에 머물러라"는 메시지를 내보내며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을 촉구하고 있다. 공공장소와 상점 운영, 종교 행사를 중지하고, 이동을 제한하려는 사례까지 늘고 있다. 또 EU 집행위원회는 외국인의 EU 여행을 30일간 금지하는 방안을 EU 정상회의에 제안할 예정이다.

▲지난 4개월간 국제유가(WTI) 가격추이.


영국항공의 지주회사인 IAG는 4월과 5월 최소 75%의 항공편을 축소할 예정이라고 17일 밝혔다. IAG는 영국항공 외에도 아일랜드의 에어링구스, 스페인의 이베리아항공과 부엘링항공 등을 소유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세계 최대 석유업체로 꼽히는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브라리언 길버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16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올해 원유수요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보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유수요는 1985년 이후 매년 증가세를 보였으며,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은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과 2009년, 그리고 미국이 경기침체에서 벗어났던 1993년 등 세 차례에 불과하다. 그만큼 올해는 원유시장이 암울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의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유가 상승을 위해 지난 13일 전략 비축유를 매입해 최대한으로 채울 것이라고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유가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현재 글로벌 잉여분을 고려하면, 미국의 전략 비축유 매입은 유가의 추가하락에 대한 리스크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유가가 아직 바닥에 오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하루 약 600만 배럴어치의 원유가 글로벌 잉여분으로 집계된 반면 전략 비축유로 매입되는 규모는 하루 50만 배럴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산유국 유가전쟁, "관계개선 없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우)


여기에 사우디와 러시아의 감산 갈등 속에서 다음달부터 예고되는 증산소식이 글로벌 원유공급량을 늘려 유가에 하방 압력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4월부터 할인된 가격으로 원유 생산량을 하루 1230만 배럴까지 늘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황이다.

에너지 컨설팅업체인 리스타드 에너지는 "3, 4월의 잠재적인 수요둔화는 세계가 지금까지 본 어떤 것보다 더 작아질 수 있다"며 "이런 와중에 산유국들은 원유시장에 새로운 공급의 수문을 연다"고 말했다. 업체는 이어 "이에 유가는 지금까지 극도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유가의 바닥은 아직 보지 못한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길버리 CFO도 "우리는 현재 수요쇼크에 직면하고 있는데 4월부터 상당한 양의 원유가 공급망에 유입될 것"이라며 "이에 유가의 방향은 밑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사우디와 러시아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의 연합체인 OPEC+의 추가 감산 합의가 이달 초 무산된 이후 OPEC 회원국들은 러시아가 나중에라도 합의에 이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이러한 기대감이 다소 식은 상태다.

17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사우디와 러시아의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 18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OPEC+ 공동기술위원회(JTC) 회의가 소집될 예정이었지만 취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회의는 앞으로 언제 다시 자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로이터통신은 "다른 OPEC 회원국들이 사우디와 러시아를 중재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며 "현 시점에서 새로운 타협점에 이르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OPEC 소식통은 "사우디가 (유가 전쟁에서) 물러나기에는 어려운 시점에 왔다"고 전했으며 또 다른 소식통은 산유국들의 중재 상황을 묻는 질문에 "유가 전쟁 전면전에 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 궁 대변인은 "러시아측은 사우디 지도부와 어떠한 접촉도 당장 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6월 이후 경기침체의 우려감이 크게 사라질 경우 국제유가가 안정화될 것이란 시각도 제기됐다. 코로나19가 제어되면서 글로벌 경제가 조금씩 기지개를 피면 유가도 덩달아 회복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KB증권의 윤장한 연구원은 "올해 6∼7월까지 국제유가의 구조적인 약세국면이 예상된다"며 "그러나 6월 이후 세계 원유수요 회복의 시그널이 중요하다. 경험적으로는 국제유가는 6개월 하락 이후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 사우디 "배럴당 30달러도 아주 편안"


▲사우디 아람코(사진=AP/연합)


한편, 유가 전쟁을 앞두고 사우디의 현재 재정상황이 관심을 받고 있다. 사우디가 2016년 산유국 치킨게임에서 패한 이후 지금까지 막대한 적자를 떠안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다가오는 유가 전쟁을 위한 실탄 확보에 의문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 2014∼2016년 치킨게임 당시 OPEC 회원국들은 저유가로 인해 4500억 달러 규모의 오일머니 손실을 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사우디의 경우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넘던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2015년에는 980억 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규모의 적자에 시달렸으며 그 여파로 인해 지금까지 최소 2500억 달러 어치의 외환보유액이 증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석유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4월 유가 전쟁이 발발할 것이란 소식 전에도 사우디는 2028년까지 매년 상당한 규모의 예산 적자에 직면해있었다"며 "심지어 예산은 브렌트유가 배럴당 84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책정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사우디 국영 석유업체 아람코의 아민 나세르 최고경영자(CEO)는 16일(현지시간) "아람코는 매우 낮은 유가도 견딜 수 있고 장기간 저유가를 유지할 수 있다"며 "5월 산유량은 4월과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칼리드 알다바그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우리는 배럴당 30달러에도 아주 편안하다"라며 "현재 저유가로도 투자자의 기대와 약속한 배당금을 맞출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브렌트유가 배럴당 20달러까지 내려와도 아람코는 ‘좋은 수준’의 배당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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