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곧 기회" 격차 벌리는 금융지주, 갈길 바쁜 우리금융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5.29 14:38

우리금융, 내부등급법 승인 -> M&A 단행 청사진
KB '비은행' M&A 가속...신한-하나 '적과의 동침'
윤석헌 "외형확대보단 리스크 관리 집중해라" 권고
금감원 '원칙' 강조하지만..."코로나19 상황 고려해야" 목소리도

▲(사진=연합)


"그룹 체제 2년 차를 맞이해 전략적 인수합병(M&A)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캐피털이나 저축은행 등 중소형 M&A 뿐만 아니라 증권이나 보험 등 그룹의 수익성을 한 차원 끌어올릴 수 있는 포트폴리오 확대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다."(2020년 1월 2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신년사 중 일부)

"금융권은 지금부터라도 외형 확대를 자제하고 충당금과 내부 보유를 늘리는 등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손실흡수 능력을 최대한 확보할 필요가 있다."(2020년 5월 22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 중징계에도 ‘연임 성공’이라는 저력을 보여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1등 종합금융그룹을 구축하는데 있어서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 손 회장은 당초 올해 내부등급법 승인을 통해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을 안정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인수합병(M&A)에 드라이브를 걸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은행권의 리스크관리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이는 금융지주 1위인 신한금융지주와 3위인 하나금융지주가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연합전선을 구축하기로 뜻을 모은데다 2위인 KB금융지주 역시 푸르덴셜생명까지 인수하면서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탄탄하게 구축한 것과 대조적이다. 

금융권에서는 코로나19로 대내외적인 여건이 어려워진 것은 전 금융권의 공통된 사안인 만큼 손 회장이 다른 지주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원의 내부등급법 승인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M&A 전략을 가동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 코로나19로 발묶인 주요 금융지주...‘포스트코로나’ 해법마련 고심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 KB, 하나, 우리금융지주 등 주요 4대 금융지주사 수장들은 연초만 해도 비은행부문을 중심으로 과감하게 M&A를 추진해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 완성도를 높이고 신성장 모멘텀을 확보하겠다고 천명했다. 저금리, 저성장 기조와 대내외적인 경쟁 심화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 놓인 만큼 우량 매물을 중심으로 신속하고 과감하게 M&A를 단행한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M&A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은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작년만 해도 국내외에서 기업설명회(IR)를 적극적으로 진행해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하는 한편 해외 시장 개척에 공을 들였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목할 점은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이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맺은 ‘글로벌 금융동맹’이다. 조 회장과 김 회장은 물론 진옥동 신한은행장, 지성규 하나은행장은 이달 25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코로나19로 글로벌 시장에서 외형을 확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적과의 동침’을 통해 금융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셈이다.

▲하나금융그룹 김정태 회장(사진 왼쪽)과 신한금융그룹 조용병 회장(사진 오른쪽)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에 소재한 롯데호텔에서 양 그룹 간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MOU를 체결하고 글로벌 사업에 있어 업무제휴를 추진했다. ​


금융권에서는 향후 두 금융그룹이 보여줄 시너지와 파급력을 주목하고 있다. 이미 금융지주 1위인 신한금융그룹의 경우 ‘리딩금융’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는데다 3위인 하나금융그룹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는 만큼 두 금융그룹이 힘을 합친다면 국내 금융그룹 1위 이상의 저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해외 시장에서 경쟁사가 대규모 딜을 따기 위해 한시적으로 손을 잡는 경우는 있지만, 공식적으로 글로벌 부문에서 과당경쟁을 지양하겠다고 선포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현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질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양사 모두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국내 한 금융사 관계자는 "양사 모두 MOU를 체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모든 가능성을 놓고 신중하게 검토 중인 걸로 알고 있다"며 "이번 MOU는 코로나19라는 현 상황에서도 기존의 틀을 버린다면 언제든지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KB금융지주를 진두지휘하는 윤종규 회장은 이미 지난달 푸르덴셜생명 인수를 통해 3연임을 위한 기틀을 마련한 만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윤 회장은 2014년 11월 취임 후 2014년 우리파이낸셜(현 KB캐피탈), 2015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2016년 현대증권(현 KB증권) 인수를 진두지휘하며 비은행부문은 물론 KB금융의 미래 성장을 위한 포트폴리오도 탄탄하게 다진 상태다.


◇ 손태승 회장, 가뜩이나 갈길 먼데...M&A는 언제쯤

반면 손 회장은 다른 지주사들과 조금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지난해 1월 지주사 출범 이후 다른 지주사와 달리 증권사, 보험사 등 비은행부문 계열사를 갖추지 못했다. 이로 인해 우리금융은 다른 금융그룹과 달리 여전히 대부분의 수익을 ‘은행’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손 회장은 지난해 국제자산신탁, 동양자산운용, ABL글로벌자산운용, 롯데카드 등 M&A를 단행한데 이어 올해 아주캐피탈, 아주저축은행을 계열사로 편입하는 등 비은행부문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올 초에도 푸르덴셜생명 인수를 검토하는 등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꾸준히 우량 매물을 검토 중이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다만 지금까지 진행한 M&A는 출범 1년차를 맞이한 우리금융의 ‘몸풀기’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우리금융은 자사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상품 경쟁력, IB 역량 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중형급 이상의 증권사와 보험사를 인수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고 있다. 또 손 회장 입장에서는 M&A를 단행하기에 앞서 지주사의 ‘자본건전성’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금융지주의 BIS 비율은 1분기 말 11.7%로 신한금융(14.1%)은 물론 KB금융(14%), 하나금융(13.8%) 등 다른 금융지주사에 비해 저조하다. 이는 금융당국의 권고 수준인 14%대보다 낮다.

물론 우리금융지주의 BIS 비율이 유독 낮은 것은 이 회사가 처한 특수한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다른 지주사와 달리 나홀로 ‘표준등급법’을 적용하고 있다. 내부등급법을 적용하는 은행이 지주사로 전환하면 자산의 위험도를 내부등급법으로 계산하는 특례조항이 2016년 말로 일몰됐기 때문이다. 내부등급법은 은행의 자체 신용평가 시스템으로 자산의 위험도를 산출하는 반면 표준등급법은 금융회사 전체 평균을 적용하는 점이 특징이다. 내부등급법을 적용하면 위험가중치가 낮아져 BIS 비율이 올라간다.

이로 인해 우리금융지주 입장에서는 내부등급법 승인을 통해 BIS 비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절실하다. 만일 표준등급법으로 BIS 비율이 낮아진 현 상황에서는 우량 증권사가 매물로 나온다고 해도 자본 여력이 적어 M&A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워 진다.


◇ 이사회 ‘강력’ 지지...손 회장 어깨에 놓여진 책무

이렇듯 대내외적으로 답답한 상황에 놓여있는 우리금융지주 입장에서 금융감독원의 ‘내부등급법’ 승인은 한 줄기 빛과도 같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우리금융지주의 내부등급법에 대한 심사를 마쳤다. 금융권에서는 늦어도 올해 상반기 중에는 내부등급법 승인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부등급법 이슈가 마무리되면 손 회장 입장에서는 M&A에 드라이브를 걸고 각종 경영 불확실성에도 지주사의 틀을 갖추는 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명분’을 얻게 된다.

특히 손 회장은 올해 3월 연임을 확정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에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손 회장은 올해 3월 금융당국의 DLF 사태 중징계 처분에도 이사회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무사히 연임에 성공했다. 더 나아가 손 회장은 금융당국의 징계에 불복해 소송까지 불사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온 만큼 그에 맞는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손 회장이 지난해 지주사 출범 직후 우리은행장과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겸직한 것과 달리 올해는 금융지주 회장 역할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만큼 타 지주사 회장과 어깨를 나란히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이사회가 DLF 중징계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손 회장의 연임을 확정한 것은 그만큼 손 회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DLF 사태의 총 책임자인 손 회장이 소송을 하면서까지 임기를 이어가는 것을 두고 금융권에서도 논란이 많았던 만큼 이를 잠재우고 자신만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칼자루 쥔 감독당국은 신중...윤 원장 "외형확장보단 리스크관리"

다만 금감원 내부에서는 우리금융을 비롯해 다른 금융사들의 내부등급법 승인 건을 두고 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칫하다 금감원의 내부등급법 승인이 금융사들의 과도한 M&A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금감원은 "우리금융의 내부등급법 모델을 보고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코로나19로 금융권에 대한 리스크 관리 역량이 화두로 떠오른 만큼 금감원 입장에서도 내부등급법을 승인하는데 있어서 코로나19 여파로인한 건전성 악화 우려 등은 없는지 등을 충실하게 살펴볼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만일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금융지주사에 내부등급법을 승인했다가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감독당국의 책임론이 대두될 수 있다. 이미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지난달부터 주요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조금씩 상승하는 등 특이사항이 감지되고 있다. 감독당국은 내부등급법 승인을 떠나 코로나19로 가계 및 기업대출이 계속해서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대출 원금, 이자상환 유예가 이어지면서 이것이 금융권의 부실화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연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물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주요 금융사들의 연체율이 오르고 부실채권이 급증할 경우 신용경색이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사 관계자는 "금융사, 특히 은행산업은 경제적 레버리지가 큰 분야"라며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졌듯이 위기 상황에서 은행들의 리스크 관리 역량은 100번을 당부해도 부족할 정도"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다행히도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대출상품을 취급 중인 우리은행은 내부등급법을 적용하고 있어 코로나19로 인한 소상공인 지원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편이다. 이는 다시 말해 우리금융지주의 내부등급법 승인 건은 ‘코로나19 대출 지원’이라는 범국가적인 상황과는 무관한, 온전히 ‘금융지주사’만의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윤 원장이 이례적으로 금융사를 향해 배당 확대를 자제하고, 외형 확장보다 ‘리스크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당부하는 것도 최근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은행권의 ‘대출 부실화 가능성’과 이로 인한 은행들의 건전성 악화 등을 염두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원장은 이달 2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2020년도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금융권은 지금이라도 외형확대를 자제하고 충당금과 내부 유보를 늘리는 등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손실 흡수 능력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 원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에 부딪친 실물경제가 숨통을 틀 수 있도록 현장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금융 부문에서 과감한 도전과 혁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전략이 강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 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은행들의 공적 역할을 강조함과 동시에 금융권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전략을 바탕으로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당장 외형 확장보다는 내실 다지기를 이루면서 기존의 틀을 깬 새로운 경영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지라는 뜻이다. 또 다른 금융사 관계자는 "윤 원장이 대외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당부하는 상황에서 금감원의 내부등급법 승인을 통해 손 회장이 M&A를 단행할 경우 감독당국이 오히려 금융사의 외형 확장에 일조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며 "감독당국 입장에서는 내부등급법 승인에 대한 원칙과 무관하게 코로나19를 계기로 금융사들의 공적 기능이 강화된 점과 우리금융이 처한 상황 등을 염두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나유라 기자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