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밈’, 미디어와 콘텐츠를 주무르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06.02 09:52

글=조재형 | <유튜브 크리에이터 어떻게 되었을까?> 저자


‘1일 1깡’ 하고 있으십니까? 가수 비가 2017년에 발매한 ‘깡’이 2020년에 이르러 전에 없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레인이펙트’, ‘나 비 효과’, ‘30 sexy 오빠’같이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듯한 ‘깡’의 가사와 그 못지 않게 격정적인 안무는 인터넷에서 조롱의 대상이 돼 버렸다. 팬으로 보이는 일부 누리꾼들은 진심어린 걱정을 담은 댓글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욕하다가도 정 드는 게 사람들의 마음이라 대중은 유튜브에서 날마다 깡을 시청하며 하루를 버텨낼 힘을 얻고 돌아간다. ‘1일 1깡’의 시작이다.

유산슬로 <놀면 뭐하니?>를 대성시킨 김태호 PD가 이 매력적인 소재를 놓칠 리 없다.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비는 ‘1일 1깡’으론 부족하다며 "나도 ‘1일3깡’을 하고 있다"고 대중의 조롱을 쿨하게 받아치기도 했다. 웃음거리로 전락했던 비의 이미지가 호감으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움짤의 시대를 지나 ‘사딸라’와 ‘곽철용’이 열어젖힌 ‘밈’의 인기는 ‘1일 1깡’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밈(Meme)’은 특정 신조어나 사진, 영상 등이 온라인에서 적극적으로 소비돼 하나의 유행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짤’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지금 불고 있는 밈의 열풍은 그리 새롭지 않다. 누군가는 ‘다 옛날부터 있던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의 밈은 인터넷 공간을 넘어 레거시 미디어, 뉴미디어 콘텐츠와 적극적으로 융합하며 콘텐츠 분야를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배우 김영철의 ‘사딸라’ 이전에 김보성의 ‘의리!’가 있었다. 김보성의 일관된 캐릭터성인 의리남은 다소 과하게 느껴지는 그 만의 말투와 행동 덕에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야인시대’는 한국의 밈을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전통의 강자다. 드라마가 정치극으로 전환된 이후 등장한 심영(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상하이 피스톨 같은 인물들의 대사는 오늘날에도 유튜브와 여러 SNS, 커뮤니티에서 짤로 소비되고 있다.

그 중 배우 김영철의 ‘사딸라’는 독보적이었다. 단순한 유행에 머물지 않고 광고계의 러브콜까지 받았다. 사실 그는 ‘야인시대’ 김두환 말고도 ‘태조 왕건’의 궁예 역을 맡은 바 있어 밈이라는 영역에 한해서는 입지전적의 존재다. 아무튼 사딸라의 인기는 2006년 영화 ‘타짜’의 곽철용을 13년 만에 소환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둘은 같은 브랜드의 CF를 찍게 된다, 밈은 이제 새로운 스타의 등용문(?)이다.

익명의 창작자들은 언제나 기대 이상의 놀라운 크리에이티브를 내뿜는다. 요즘은 어떤 영화나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 그 즉시 새로운 짤이 만들어지고, 이모티콘으로 활용된다. 인기리에 종영한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도 창작자들의 예리한 눈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인스타그램 사용자라면 이태오의 ‘사.빠.죄.아.(극중 대사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의 준말)’ 짤을 한 번쯤 봤을 거다.

최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 밈은 풍자와 희화화에 기반한 유행이다. 놀이 문화라고 하지만 태생적으로 누군가를 조롱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지나친 조롱으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날이 오지 않길 바란다. 부디 오래오래 유쾌하면서도 건전한 웃음을 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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