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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양재 본사 전경. |
[에너지경제신문=여헌우 기자] ‘정의선 시대’가 개막된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여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룹 주력사간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는 동시에 정의선 회장의 지분율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는 ‘묘수 찾기’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임박...'정의선 체제' 마지막 퍼즐
18일 재계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은 지난 14일 그룹 수장 자리에 오르며 본격적인 3세 경영 시대를 열었지만 지분 정리가 말끔하게 마무리된 상태는 아니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은 부친인 정몽구 명예회장으로부터 주력사 지분을 증여받는 동시에 그룹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동시에 추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그룹 순환출자는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대제철(지분율 11.8%)와 정의선 회장의 현대글로비스(지분율 23.29%) 등이 중간에 들어있긴 하지만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정의선 회장의 주력사 지분율이 현저히 낮다는 점이다. 현대차 2.35%, 기아차 1.74%, 현대모비스 0.32%를 지녀 사실상 그룹을 지배하기 힘든 수준의 영향력이다. 특히 현재 순환출자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지분은 현대차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인데, 해당 지분율이 거의 없는 게 정의선 회장 입장에서는 고민이다.
지난 2018년 3월 추진했던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서도 현대차그룹의 고민이 엿보인다. 당시 그룹은 현대모비스의 일부 사업부를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후 총수 일가는 남게 되는 존속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이고, 이 기업이 또 나머지 주력사를 지배하는 형식이다. 정의선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율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신의 한 수’였지만 시장의 반대로 무산됐다.
시장에서는 어떤 형식으로건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다시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가장 큰 변수는 코로나19였는데, 어느 정도 이에 대한 영향권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정의선 회장이 지난 15일 수소경제위원회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답한 것을 두고도 업계에서는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 현대차그룹 선택은 '미궁'...기존 안 수정·보완이냐 새로운 카드냐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기존 안을 수정·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그룹 총수 일가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깔끔한 안이기 때문이다.
2년여 전 내놨던 시나리오의 뼈대는 현대모비스 사업부문과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이다. 그럴 경우 운송업을 주로 하는 현대글로비스의 가치와 그룹 핵심 사업인 현대모비스 AS·모듈 분야가 시너지를 발휘해 지분가치가 극대화된다. 현대글로비스 최대주주인 정의선 회장 등은 해당 기업 지분을 처분해 지배구조 정점에 남게 되는 존속모비스 지분을 사들인다는 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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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 CI. |
문제는 합병 비율이었다. 정의선 회장 중심의 현대글로비스 가치를 끌어올리려다보니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 비율이 시장의 입맛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일각에서 당시 개편안이 ‘엘리엇 때문에 실패했다’는 인식이 퍼져있긴 하지만 이는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글로벌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 비율이 현대모비스 주주들의 이익이 반한다"는 입장을 밝힌 게 원인이었다.
바꿔 말하면 양사간 합병 비율을 재조정할 경우 시장에서 과거 지배구조 개편안을 재평가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다만 세금이 부담이다. 대주주가 글로비스-모비스 합병회사 지분을 정리해 존속모비스 영향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최대 2조원까지 양도세가 나올 것으로 추산된다. 이후 정의선 회장이 정몽구 명예회장으로부터 해당 기업 지분을 증여받을 때 또 증여세가 수조원 발생한다.
다음으로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서 사업회사만 분할해 합병하는 안이다. 남는 회사끼리도 합병해 투자회사로 남겨두고, 이를 ‘지배회사’ 삼아 주력사들의 지분을 매입하는 구조다. 이는 완성차 부품·모듈 제작과 조립까지 이어지는 사업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다.
대주주 역시 투자회사로 남는 현대차·현대모비스 기업 영향력을 상당 수준 확보할 수 있다. 교통정리 과정에서 대주주가 현대글로비스 지분 등을 팔아 지배력 강화를 위해 다른 기업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는 여유도 생긴다.
삼성그룹의 사례처럼 ‘미완의 지주사’를 꾸려나갈 방법 등도 거론되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 들어 순환출자 고리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자 일찍부터 언급됐던 사안이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을 모두 투자 부문과 사업 부문으로 분할해 투자부문을 지주사로 택하는 방식이다.
대신 지주회사 체제를 택하지는 않고, 최소한의 지분율과 총수 일가의 영향력을 합해 주력사를 지배하는 식이다. 지주회사와 같은 합병사가 영향력을 발휘하되 모자란 부분을 총수일가 개인 지분으로 보완하는 방법이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꼼수’로 내비쳐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주사 방식을 택하기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현행업상 지주사 체제에서는 금융 계열사들을 매각해야 하는데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현대차투자증권 등 계열사의 역할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판매와 카드·캐피탈은 떼어놓기 힘들다.
순환출자를 단순히 끊어버리는 ‘정공법’도 가능하다. 기아차가 지배하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대주주가 모두 사들이는 방법이다. 이럴 경우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구조가 단순화된다. 정의선 회장의 자금 마련에는 부담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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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
정의선 회장이 ‘실탄’으로 쓸 만한 현대차그룹 지분은 현대글로비스(23.29%), 현대위아(1.95), 현대오토에버(9.57%), 현대엔지니어링(11.72%) 등이다. 이 중 현대엔지니어링은 비상장사라 현대건설 또는 현대로템과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은 세대교체를 마무리하기 위해 무조건 수조원 증여세를 준비해야하고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서도 고통분담이 필요하다"며 "2년전 실패 경험이 있는 만큼 시장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큰 지배구조 개편안은 내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