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상법·공정거래법 개정 신중하게 접근해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10.26 09:45

전국경제인연합회 유정주 기업제도팀장


코로나19로 국가 전체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올해 한국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은 기정사실이 되었고, 상황이 악화되면 마이너스의 폭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청년 4명 중 1명은 사실상 실업 상태이고, 직원을 둔 자영업자는 지난해와 비교해 17만 명이나 증발했다. 기업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업종, 규모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불난 집’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올해 2분기 100대 기업의 해외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9.8%나 떨어졌다. 산업별로 살펴보면 전기·전자(△5.1%), 자동차·부품(△36.5%), 에너지·화학(△30.9%), 철강·금속(△80.7%) 등 우리경제의 주력산업이 모두 부진을 겪는 모습이다.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더 사태가 심각해 수출 확대를 통한 위기극복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위기대응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조치는 주로 ‘돈 풀기’와 관련된 것이다. 사상 최초로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이 지급되었고, 여러차례의 추경도 편성했다. 재정건전성을 희생하면서까지 무리해서 돈을 쓰고 있지만, 극적인 반전은 어려운 상황이다. 다른 한편에서 정부가 각종 규제 법안을 통해 확장재정의 경기부양 효과를 스스로 깎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경제계가 가장 우려하는 법안은 정부의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이다. 정부안이 처음 공개된 이후,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단체, 그리고 전문가들은 해당 법안이 기업활동과 국가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달 말 개정안을 원안 그대로 국회에 제출했다.

상법 개정안은 해외 투기자본에 날개를 달아주는 법안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해외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 규제를 대폭 폐지함으로써 적대적 M&A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반면, 차등의결권, 포이즌 필 등 선진국이 도입하고 있는 경영권 방어수단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기업들은 헤지펀드의 위협과 간섭에 늘 시달려 왔다. 2003년 소버린의 SK 지도부 교체 요구, 2006년 칼 아이칸의 KT&G 이사진 입성 등은 그 대표적 사례다. 가깝게는 2018년 엘리엇이 현대자동차그룹의 사업재편을 무산시킨 바도 있다. 이번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임하면서도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감사위원분리선임, 자회사에 출자하지도 않은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가 현실화되면 해외 거대 투기자본의 기업 경영권 위협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막는 법안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새롭게 지주회사가 되는 기업집단은 자회사와 손자회사의 주식을 이전보다 더 많이 보유해야 한다. 분석 결과 지주회사 체제 전환비용만 30조1000억원에 달하고, 그에 따른 일자리 손실은 23만8000명에 이를 전망이다. 투자·일자리 창출에 써야 할 자금을 지분 매입에 쓰도록 하는 것이다. 또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확대되면 제품의 효율적 생산과 안정적 수급을 위해 꼭 필요한 계열사 간 거래가 위축될 것이고, 기업 경영의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 이는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만일 규제에 순응하기 위해 총수일가가 보유 지분을 매각할 경우 시장은 이를 사업 축소·포기의 시그널로 인식해 주가가 하락하고 그로 인해 소수주주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두 법안은 기업들이 위기 극복에 역량을 총 동원해도 모자랄 시기에 투기세력과의 싸움, 지분 매입, 소송 대응 등 엉뚱한 곳에 힘을 빼도록 하고 있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필요한 규제를 최대한 걷어내 기업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에 좀 더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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