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준 변호사의 ‘똑’ 소리나는 중기 법률상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0.05.26 14:01

이름만 빌려준 ‘바지 감사’의 책임

친척 사이인 갑, 을, 병은 A사를 설립하면서 1대 주주인 갑을 대표이사, 을, 병은 이사 그리고 갑의 처 정을 감사로 했다. 공격적인 경영으로 A사의 외형은 커져갔지만 채산성은 악화돼 손실이 누적되어 갔고, A사는 소요자금을 금융기관 차입금에 의존하게 됐다.

회사의 재정 상태를 사실 그대로 밝힐 경우 금융기관으로부터 추가 자금 대출을 받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존 대출금마저 회수될 처지였다. 대표이사 갑은 이사들에게 부실상태를 숨기는 재무제표작성을 지시했다. A사는 분식회계장부를 금융기관에 제출해 추가 대출을 받고 회사채 발행 보증을 받았다. A사의 부도로 큰 손해를 본 금융기관은 갑, 을, 병, 정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갑의 처인 정은 자신은 갑에게 인감도장을 맡긴 적은 있으나 분식회계 장부 작성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A사와 같이 친척이나 지인을 감사로 선임하는 일은 중소기업에서는 흔한 일이다. 위 사례에서 대표이사 갑과 이사 을, 병은 당연히 제3자인 금융기관에 대해 상법상 손해배상책임과 형사상 업무상 배임의 죄책을 질 것이다. 문제는 감사 정이다. 갑의 처 정은 회사일에는 전혀 관여를 하지 않았고 인감도장을 남편에게 맡긴 죄 밖에 없으니 빠져나갈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주식회사의 감사는 이사의 업무집행과 회계를 감사할 권한을 가진 강력한 기관이다. 사례에서 정은 실질적으로 감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의사가 전혀 없으면서도 자신의 도장을 이사에게 맡기는 등의 방식으로 그 명의만을 빌려주었다. A사 대표이사나 이사들은 어떠한 간섭이나 감독도 받지 않고 분식회계장부를 작성하고 금융기관에 제출했다.

이사의 업무집행감사권을 가진 감사가 그 직무를 포기한 것이다. 이 경우 감사 정은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임무를 해태한 때에 해당해 그로 말미암아 금융기관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만약 사례에서 갑의 처 정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감사로 선임되었고 그가 감사로서 결산과 관련한 업무 자체를 수행한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이럴 경우에는 문제된 분식결산이 쉽게 발견 가능한 것이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허위로 작성된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을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분식결산이 회사의 다른 임직원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교묘하게 이루어진 것이어서 감사가 쉽게 발견할 수 없었던 때에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손해배상책임을 지기 어렵다.

·전화 02-532-8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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