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10년전 방폐장 악몽 아직도...돌지않는 해상풍력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5.03.22 04:29

부안 해상풍력 추진 현장

▲부안군청의 모습. 부안군은 경제적으로 낙후된데다가 과거 방폐장 때문에 생긴 집단 트라우마 때문에 해상풍력사업 유치에 지지부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사진은 부안군청사의 모습. <사진=안희민>

"정부가 밀어붙이면 통하는 줄 알아?"

한 부안군청 공무원의 날선 한마디였다. 마치 엊그제 당한 일인 양 말 가운데엔 감정이 살아 있지만 2003년 방폐장 유치를 둘러싼 부안 사태에 관한 말이다.

다른 공무원도 마찬가지였다. 발전소 인근 보상법을 고쳐서라도 부안군이 해상풍력발전소만 유치하면 정부 지원이 있을 거란 말에 "다 속임수야", "저번에 써 먹은 논리야"라는 말이 돌아왔다.  

부안은 아늑한 관광도시다. 변산반도국립공원을 품고 있고 조선시대 어사 박문수가 부안을 두고 ‘생거부안(生居扶安)’이라고 할 정도로 화려한 풍광과 풍부한 물산을 뽐내지만 10년 전 방사능폐기물처리장(이하 ‘방폐장’)이 할 퀸 상처가 부안의 폐부 깊숙이 관통하고 있었다.

부안사태는 2003년 방폐장 유치를 둘러싸고 주민이 찬반 양측으로 갈려 극렬하게 대립했던 사건을 말한다. 방폐장을 추진했던 당시 부안군수는 부안 내소사에서 주민들에게 감금폭행을 당했고 경찰은 찬반으로 갈린 주민 간 충돌을 막고자 1만 명을 파견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주민들이 반대하면 안 된다는 게 군수님의 입장입니다."

부안군청 공무원은 부안군수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김종규 부안군수를 직접 만나봐도 마찬가지였다. 김 군수는 입장을 확인하는 기자의 질문에 손사례로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군수는 10년 전 부안사태 당시 당사자였다. 부안사태로 재선에 실패한 김 군수는 절치부심했고 9년 만에 군수직에 재선출됐다. 그런 그에게 다시 정부 사업 유치에 대한 입장을 묻는 건 무리였다. 그것이 방폐장과 수평 비교가 불가능한 해상풍력발전단지일지라도 말이다.

▲한적한 부안군청 인근 모습. 부안군은 지역내총생산은 1조원 규모로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막 진입한 규모다. 65세 인구가 27%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은 부안군청 옥상에서 찍은 부안읍의 모습. <사진=안희민>

하지만 언제까지나 과거의 상처에서 발 묶여 있기엔 부안의 경제지표는 너무나 나쁘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안의 2011년 지역내총생산은 1조 1641억 1100만원으로 중견기업을 막 탈피한 대기업 수준이다.

2013년 4736개에 달하는 사업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업종이 도매와 소매업 1396개소, 숙박과 음식점업 1120개소이며 제조업은 341개소에 불과하다.

개인사업체가 3785개소로 대부분이며 9004명이 종사해 307개 3752명이 종사하는 회사법인과 대조를 이룬다. 게다가 1∼4명이 종사하는 사업체수가 4106개, 종사자 8125명으로 영세업체가 거의 대부분이다.

경제적으로 암울한 부안군 경제는 미래에도 별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래 지역경제를 책임질 젊은이들을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올해 1월 말 현재 5만 7413명인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이 1만 6007명으로 27.8%에 달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제성장에 대한 지역민의 열망이 드세다.

한산수씨(63)는 "과거 김제와 정읍이 부안을 경제적으로 따라오지 못했고 고창이 부안을 따라오려면 15∼20년 걸린다고 말할 때가 있었다"며 "지금은 역전돼 부안이 고창을 따라가는데 15∼20년 걸린다"고 말했다. "젊은이가 떠나지 않고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섭씨(56)은 "어업이 부안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비하다"며 "도소매업, 식당 등이 잘 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도에서 택시기사를 하는 김종근씨(63)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김씨는 "부안 경제발전을 말할 때 아무도 위도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위도발전위원회를 만들어 주요 경제 사안이 논의될 때 참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부안군은 어사 박문수가 생거부안이라고 칭할 정도로 풍광과 물산을 뽐냈지만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사진은 부안의 한가로운 들녁.<사진=안희민>

이들에겐 산업부가 위도 앞바다에 추진하는 서남해 해상풍력사업이 하나의 희망이었다. 2003년 방폐장을 유치하면 정부가 지원해준다는 김 군수의 주장이 이번 해상풍력사업에 투영된 듯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보상 후순위자다. 해상풍력발전단지가 바다에 설치되는 만큼 어민들이 최우선 보상대상이다. 게다가 한국해상풍력(이하 ‘한해풍’)은 주민 호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는 직접 지원보다는 어초 설치해 어군을 풍부히 하는 등 간접 지원책을 제시하고 있다. 한해풍은 서남해 해상풍력사업을 진행하는 특수목적법인이다.

즉 지역 경제가 막 다른 골목에 이르자 부안군민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이 보상대상이라며 서남해 해상풍력사업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같은 부안군 어민들에게도 배제받는 실정이었다. 한해풍 관계자에 따르면 작년에 위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해상풍력에 관한 설명회를 개최했는데 어민들의 방해로 진행하지 못했다. 어민들은 자신이 보상 대상인데 어업과 관련 없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종근씨는 어민 측의 주장에 "농민도 고기 잡을 수 있고  어민도 뭍에 나와 농사 지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어민과 비어민 간 갈등은 주민의 증언에서도 직접 확인된다. 식도 어장이라고 밝힌 모 인사는 "식도는 어촌인데 어민과 비어민간 갈등이 있다"고 말했다.

누구의 말이 옳은 지 알 수 없지만 시작도 하지 않은 해상풍력발전사업을 두고 이미 주민들 간 긴장이 조성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을 부안군이 아는 듯 부안군은 해상풍력사업 진행을 위한 기초조사인 해저지형 재측정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과거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위도 인근 해상에 해상풍력발전시설 설치를 위한 해저지형조사를 했었다. 하지만 이들 두 회사가 빠지고 두산중공업 단독으로 사업에 참여하면서 새로 해저지형 조사가 필요했다. 세 회사가 개발한 해상풍력터빈의 사양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당초 이달 새로운 해저지형조사가 인가가 있어야 했지만 부안군이 반려했다고 한해풍 관계자는 전했다. ‘주민 합의 없는 사업에 인허가 없다’는 김 군수의 입장이 그대로 실현된 셈이다.

▲부안은 아늑한 관광지다. 하지만 속내는 2003년 방폐장 사태가 준 집단 트라우마에 신음하고 있었다. 사진은 대명콘도 변산반도와 격포 앞바다. <사진=안희민>

하지만 이러한 결정이 지혜롭게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 근원은 몰락한 부안군의 경제이지 주민갈등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컨대 부안군은 과거 방폐장 때문에 생긴 집단 트라우마(정신적 상처) 때문에 정부 사업 수용을 지레 겁먹고 있었다.

활력을 잃은 경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주민의 불만은 계속 확대 재생산되고 있었다. 서남해 해상풍력사업이라는 국가 사업은 아무 상관없는 방폐장의 악몽에 짓눌려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지부진한 사업은 대기업의 사업부 해체와 참여 연기로 이어졌으며 이는 다시 부안군민에게 고스란히 되돌아가고 있었다.

김종근씨는 자신의 아들이 삼성중공업 풍력사업부 소속이었다고 밝혔다. 김씨의 아들은 풍력사업이 지지부진하자   씁쓸히 전기 관련 부서로 전출됐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에 따르면 아들은 고향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렇게 부안군민의 집단 트라우마가 부메랑이 돼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것이 2015년 봄 부안군의 숨은 현실이었다. 전북 부안=안희민 기자 ahm@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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