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 세종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전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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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욱 세종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전 환경부 차관 |
하지만 역대 정부에서 보았듯이 임기 중반을 넘어가면서 서슬 퍼렇게 추진하던 핵심정책도 필연적으로 복기과정에 직면하게 된다. 집권 초기 분위기라면 전혀 문제가 안 될 것 같던 일도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공공성의 잣대를 들이대면 하자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더구나 국민적 공감대가 미처 무르익지 않은 설익은 정책을 밀어붙인 경우 거의 예외 없이 그 부작용이 나타난다.
그 과정에서 일선 공무원들의 일탈이 드러나게 되고 법적 대가를 치르게 된다. 지금 탈원전 정책도 예외 없이 그 길로 들어서고 있다. 감사원 감사에 이어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해당 장관이 조사를 받고 일부 공무원들이 입건되어 구속되는 등 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집권 여당에서는 정부의 정책 결정에 대한 감사나 수사는 곤란하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지만 검찰의 수사가 절차적 정당성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 흐름을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민간부문에서 일하다 한때 공직에 몸담았던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공공정책 결정에 있어서 결과적 효율성보다 절차적 정당성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고위공직자들도 이를 피해가지 못하고 어려운 상황에 이르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지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적폐청산이란 명목으로 수많은 공무원들이 궁지로 내몰리던 모습을 곁에서 보았으면서도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고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쩌면 공무원들의 숙명인가 보다.
사실 탈원전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보더라도 큰 의사결정에 속한다. 한 가정에 비유한다면 부부가 갈라서야 할지도 모르는 대사(大事)인 셈이다. 절차적 정당성만 따지기에는 국가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큰 사안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내디딘 탈원전의 발걸음은 이미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원전생태계 붕괴, 대체 에너지원 불투명, 발전원가 상승과 전력요금 인상, 해외진출 타격, 지역사회 불만, 탄소중립 정책과의 상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점을 노정하면서 힘겨운 발걸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대로 가도 되는 것인가? 혹시 차기 정부가 방향을 바꾸지나 않을까? 관심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하게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현 정부가 스스로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손 놓고 있다가 새 정부가 들어서면 그때 가서 또다시 공론화하여 국론이 분열되고 엄청난 시행착오로 국가적 손실을 감내해야 할 지경에 이르는 모습을 마냥 지켜봐야 하는가?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탈원전에 반대하고 있으며 이를 기정사실화하는데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휘발성도 여전히 큰 사안이라 할 수 있다.
내년 상반기로 다가온 대선과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지금부터라도 탈원전에 대한 합리적 논의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정부나 국회가 나서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학계나 언론, 경제단체, 아니면 사회단체가 중심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단 정치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가능한 모든 역량을 집결하여 분석하고 논의한 결과가 지금 그대로 또는 전면 백지화라는 일방적 처방이 아니어도 좋다. 일정 조정이라는 타협적 대안도 가능할 것이다. 이것도 안 된다면 차기 대선 후보자들이 각자의 입장을 제시하게 하고 국민들이 심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년이라는 시간을 그냥 보내기에는 이 사안이 국가 장래에 미칠 부작용이 너무 심각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