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총 키워드 '여성 환경전문가 사외이사'
포스코, LG, 현대차그룹 등서 줄줄이 발탁
기업의 사회적·환경적 책임 커짐에 따른 조치
|
▲대기업 사외이사로 최근 선임된 여성 환경 전문가. (왼쪽부터) 유영숙 전 환경부 장관, 이수영 에코매니지먼트코리아홀딩스 집행임원, 서수경 숙명여대 환경디자인과 교수, 제현주 옐로우독 대표, 윤윤진 카이스트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
문재인 정부 들어 점차 정·관계에 폭 넓게 진출한 여성 환경 전문가들이 이젠 산업계에서도 비싼 몸 값을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여성 환경 전문가들을 비정부기구(NGO) 인사로 분류하는 것은 이미 옛말이 됐다.
그간 외형 위주 기업 활동 중시 경향과 이를 뒷받침한 성장 일변도 정책이 우선시 되면서 이를 반대하고 견제해온 여성 환경 전문가들은 고도성장기를 거쳐 최근까지도 대체로 시민단체 활동 영역에 머물렀다. 성장의 발목을 잡는 훼방꾼이자 기업 입장에선 거리를 둬야 하는 불편한 존재 정도로 인식됐다. 그들의 목소리도 자연 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이 거침 없다. 사회적 격차 해소에 눈치 빠른 정치 및 관료 등 공공부문을 넘어 계산기 두드려 경영실적에 민감한 민간 산업계에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격세지감이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기업의 올해 주주총회 특징으로 여성 환경전문가 사외이사 선임이 꼽힌다. 재계의 간판기업인 포스코, LG, 현대차그룹 등이 정기 주주총회를 거쳐 여성 환경전문가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했거나 앞두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이 그간 사외이사로 대관 등 경영에 직접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고위공직자나 법조인 또는 은퇴한 경영자들을 기용해왔던 관행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내 산업계에서 여성 환경전문가를 발 빠르게 영입하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더불어 환경적 책임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8월 시행되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자산 2조원 이상 상장 법인은 특정 성(性)으로만 이사회를 구성할 수 없도록 한 점도 그 배경으로 꼽힌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거나 환경 친화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기업들은 시장 경쟁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실장은 "여성 사외이사 의무화가 시행될 예정이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며 "여성 환경전문가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하기 분주한 데에는 이런 흐름에 따라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는 기업들 내부적으로 여성 환경 전문인력이 내제화 돼 있지 않아 사외이사를 통해 조치를 마련하고 있지만 앞으로 환경에 대한 중요성이 커질 경우 내부 인력 강화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ESG본부장은 "지금은 기업의 내부 인재만으로 자본시장법이나 ESG 경영 강화를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사외이사를 영입해 수혈할 수 밖에 없다"며 "앞으로 ESG 경영이 중요해짐에 따라 내부적으로도 환경 전문 인력들 강화할 수도 있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지난 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이자 전 환경부 장관인 유영숙 박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산업재해와 국내 온실가스 배출 1위 기업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등 포스코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만큼 이사회 산하에 ESG위원회를 신설한 데 이어 전문가를 영입해 기업의 문제를 개선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포스코 사외이사로 선임된 유영숙 박사는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14대 환경부 장관을 지내면서 해마다 유엔기후변화총회에 참석해 국제사회의 환경 동향을 파악해 왔다. 국내에서도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활동을 이어가는 등 환경 분야 전문가로 통한다. 현재는 다시 KIST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을 겸임 중이다.
유 박사는 마크로젠의 ESG 위원장 및 신규 사외이사 후보로도 추천됐다. 마크로젠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관련한 지속 가능 경영전략 의사결정기구인 ESG 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하고 오는 31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유 전 장관을 위원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LG그룹 5개 상장사도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LG와 LG전자, LG유플러스, LG하우시스, 지투알 등 5개사가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할 예정이다. 이 중에서도 환경전문가가 영입되는 곳은 LG와 LG하우시스다.
LG는 오는 26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수영 에코매니지먼트코리아홀딩스 집행임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한다고 공시했다.
이수영 집행임원은 환경 서비스 회사인 코오롱에코원의 대표이사를 역임한 바 있다. 주총 이후 이수영 집행위원은 환경 분야 전문가로 LG의 경영 자문 역할을 맡는다.
LG하우시스는 서수경 숙명여대 환경디자인과 교수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서 교수는 국내 교수 최초로 아시아 실내디자인학회 사무총장을 지낸 경력을 바탕으로 LG하우시스의 경영 자문을 맡는다.
특히 이번 주총에서 회사 분할 안건이 승인될 경우 LG하우시스는 구본준 LG그룹 고문이 이끌어 갈 LX홀딩스로 편입된다. LG하우시스와 더불어 신설 그룹으로 편입되는 5개 계열사들은 외부 사업을 확대하고 다양한 사업을 발굴해 주력사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서 교수는 고부가 토털 인테리어 서비스 시장을 집중 공략할 계획인 LG하우시스의 핵심 업무에 대한 자문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LG하우시스는 친환경 프리미엄 인테리어 제품과 서비스로 사업을 차별화하고 B2C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LG유플러스는 제현주 옐로우독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제현주 대표는 벤처캐피털(VC) 투자를 지휘하고 있다. 맥킨지앤컴퍼니 컨설턴트와 칼라일코리아(사모펀드) 상무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17년 부동산 투자 회사 ‘공공그라운드’에 합류해 본격적인 임팩트 투자(수익 창출과 사회적·환경적 성과도 달성하는 투자)를 진행했다.
지난 2016년 설립된 옐로우독은 △기후 변화 대응 및 환경 솔루션 칼라일코리아(사모펀드) 상무 △웰니스 및 헬스케어 △교육 △워크스타일 솔루션 등 4가지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킬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다.
현대차그룹도 오는 24일 주총에서 주요 상장 계열사에 사상 최초로 여성 사외이사 선임을 추진한다. 이 가운데 현대글로비스는 윤윤진 카이스트 건설·환경공학 부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한다.
윤윤진 현대글로비스 사외이사 후보는 모빌리티 빅데이터와 수리교통과학, 교통자원최적화 등 산업시스템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글로비스는 신규사업을 진행하고자 △기체 연료 및 관련제품 도매업 △운송장비용 가스 충전업 △로봇의 제조·수출입·유통·임대·유지보수 및 관련 서비스업 △소프트웨어의 자문·개발·공급·유지보수 및 관련 서비스업 등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한편 공공부문의 경우 우선 노동계 출신이지만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한국대표로 활동했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와 의원연구단체 ‘기후변화포럼’ 공동대표를 지낸 3선의원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내각에 포진해 있다. 또 청와대의 김제남 시민사회수석, 국회의 양이원영·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여성 환경분야 전문가로서 두각을 나타내는 모습이다. 김 수석은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운영위원장 등 오랜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국회의원과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양이 의원은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 처장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 등으로, 이 의원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분야 변호사와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 등으로 일했다.
claudia@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