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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로이터/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 포함 세계 주요 경제권에서 심화하는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에너지 가격의 안정화가 필수인데 이를 위해선 원유 증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후변화 대응을 주요 정책 목표로 삼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이 카드를 선뜻 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보다 6.2% 올라 지난 1990년 12월 이후 거의 31년만에 최대폭 급등을 기록했다.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예상치인 5.9%를 웃돈 수준이기도 하다.
전월 대비 CPI 상승률도 0.9% 올라 시장 전망치인 0.6%를 상회했다. 전월대비 CPI 상승은 0.9%을 기록한 지난 6월 이후 7월 0.5%, 8월 0.3%, 9월 0.4%로 낮아졌다가 다시 상승폭이 커졌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물가상승 추세를 뒤집는 것이 자신의 "최우선 사안"이라며 인플레 장기화 우려에 대한 진화에 나섰다. 수많은 미국인의 일상에 직접적 타격을 주고 있는 물가 폭등은 바이든 정부의 정치적 기반까지 위태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신인인 공화당의 글렌 영킨 후보가 민주당 텃밭인 버지니아주에서 민주당 후보를 꺾은 것도 물류 대란과 물가 상승 등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정책 난맥상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으로서는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인플레 대응에 실패할 경우 내년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허투루 흘려듣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WSJ는 치솟는 원유 가격이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시기에 바이든에게 딜레마를 안겨줬다며, 백악관이 원유 공급을 늘리기 위한 제한된 선택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급등한 에너지 물가가 거의 모든 부문에 걸쳐 가격을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에너지 가격은 전년 대비 30% 상승했고 휘발유와 연료유가 같은 기간 각각 49.6%, 59% 각각 폭등했다.
이로 인해 중고차 가격은 1년 만에 26.4% 올랐고 식음료(5.3%), 신차(9.8%), 주거비(3.5%) 등의 상승폭도 심상치 않았다. 에너지 가격은 전달 대비 4.8% 올랐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도 전년 동월보다 4.6%, 전월보다 0.6% 각각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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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WTI 가격 추이(사진=네이버금융) |
바이든 행정부 역시 광범위한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이라고 보고 있다.
이달 초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급히 사우디 리야드까지 날아갔던 것도 산유국 카르텔인 OPEC+(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기타 산유국 협의체)의 원유 추가 증산이 국제유가 안정에 필수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든의 이런 노력은 사우디의 추가 증산 거부로 실패로 돌아갔다. 미국의 오랜 동맹이던 사우디가 바이든의 증산 요청을 거부한 것은 바이든이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거론하면서 냉랭하게 대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카슈끄지 피살과 관련해 빈 살만 왕세자의 책임을 묻지 않고 묵인하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조적이다.
OPEC+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원유 증산 요청은 다른 측면에서도 비판받고 있다.
WSJ는 바이든이 지구온난화 대응을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겠다면서도 OPEC+에는 원유 생산을 늘리라고 압력을 가하는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후변화 대응을 주요 정책 목표로 내세우며 취임 초기부터 자국 내 원유 생산을 억누른 바이든이 OPEC+에는 증산을 요청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OPEC+에 대한 원유 증산 요청이 실패로 돌아가자 바이든 행정부가 자국 내 화석연료 생산을 줄이겠다고 한 내부 원칙을 깨려 한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정부가 최근 미국 내 일부 석유 생산업체와 접촉해 얼마나 빨리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지 문의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전략 비축유 방출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최근 민주당 상원의원 11명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전략 비축유를 방출하거나 원유 수출을 금지하는 방안까지 고려하라고 건의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FT에 "백악관이 희망한다고 해도 성공이 보장된 확실한 수단은 없다"며 "백악관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희망은 팬데믹이 서서히 물러가면서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