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스크'에 스텝 꼬인 韓 주력산업...정부는 어디갔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11.21 11:49

SK하이닉스 中투자 제동..디스플레이·배터리도 ‘노심초사'



민관 공동대응이 대안으로…”안보적 관점에서 대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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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반도체 공정


[에너지경제신문 이진솔 기자] 최근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사슬 붕괴가 심상치 않게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례도 나오고 있어 기업들은 물론 정부의 세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반도체를 포함한 핵심 산업 분야에서 중국 성장을 막겠다는 미국 의지가 더욱 강해지고 있어 우리 주력 산업의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어서다. 업계는 공급망 리스크를 안보적 차원에서 관리해줄 정부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21대 대선을 앞두고 국내 정치상황이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더욱 더 중심을 잡아달라는 요청이다.


◇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전방위 불똥


2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 우시에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SK하이닉스는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반입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미국 정부가 SK하이닉스 중국 내 첨단 장비 반입을 원치 않는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에 설치하려던 EUV 노광 장비는 반도체 성능을 고도화하는 데 필수적이다. 적기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핵심 경쟁력을 잃게 될 우려가 있다.

SK하이닉스는 우시 공장에 EUV 장비를 투입하기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태도를 밝혔다. 지금 당장 필요하진 않은 만큼 시간을 두고 대응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를 위한 중국 반독점심사 승인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이 앞서 자국 반도체 경쟁력 보호를 위해 해외 기업 간 인수·합병(M&A) 승인을 내주지 않으며 결국 교착상태로 끌고 간 전례가 있어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 측은 올해 연말까지 승인을 받고 인수를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도 대부분 중국에서 이뤄진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 광저우에 주력 OLED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TV용 패널 수요 급증으로 생산량도 월 3만장 규모로 크게 늘린 상황이다.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계에도 불안감이 증폭됐다. 우리나라는 주요 원료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조달한다. 특히 리튬과 코발트에 대한 의존도가 90%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은 모두 중국 현지에 배터리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추가적인 증설에도 나설 예정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최근 배터리 주요 광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 안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원료 공급망에 대한 불확실성은 큰 악재가 될 수 있다"며 "미국 투자를 빌미로 삼아 중국이 원료 수출을 막으면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글로벌 공급망 건드리는 美…"정부, 안보적 차원에서 지원 필요"


문제는 미국과 중국 간 첨단 기술을 두고 벌어지는 패권경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미국은 중국에 견줘 열세인 반도체와 배터리 등 제조 부문 공급망을 자국으로 내재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지난 6월 백악관이 발간한 ‘반도체 및 배터리 공급망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 등 4대 전략품목에 대해 중국보다 열위에 있다고 판단하면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반도체지원법’ 및 동맹국 협력 등 정책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향후 조치가 우리 산업 향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대응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미국은 국가 안보적 차원에서 첨단기술 확보 및 중국 견제를 위해 초당적 차원에서 관련 법안을 입법화하고 있다"며 "대외 리스크에 노출된 강도가 센 우리 산업 구조를 고려할 때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안보적 이슈와 결합한 첨단기술 및 공급망 의제를 경제와 안보의 통합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다루기 위한 제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은 한국과 일본 등에 전략비축유 방출을 요청하며 휘발윳값 진정에 나섰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물가 급등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세를 만회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사실상 다른 나라에 자국 선거를 위한 도움을 위해 민감한 비축유 방출을 요구한 것이라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수급이 아닌 단순 가격 문제로 비축유를 방출하는 사례가 없어 신중히 판단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우리 주력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안보 관점에서 기업들이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라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규제 개혁과 세제 지원 등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제도적 발판 등 전방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jinsol@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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