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철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고용서비스정책학과 교수
▲장신철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고용서비스정책학과 교수 |
2020년 초부터 세계를 덮친 코로나 팬데믹은 마치 지진처럼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을 흔들어 놓았다. 외부로부터의 강한 위기가 밀려올 때 각종 제도와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제대로 방어막 역할을 해주느냐 하는 것은 바로 그 사회와 국가의 경쟁력을 보여준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사회안전망을 보강했지만, 파고가 훨씬 큰 금번 코로나 위기 앞에서 많은 한계를 드러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식당, 문화예술, 문화예술, 여행, 운수 분야 등의 종사자들은 직격탄을 맞았고 수입 감소와 실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 사회가 보다 촘촘하고 견고한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있었다면 취약계층들의 고통이 다소나마 덜했을텐데 말이다.
위기는 항상 사회의 약한 고리부터 충격을 주기 마련이다. 정부가 취약계층의 사회안전망을 보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위기 시에는 일자리 감소와 실업에 대응할 수 있는 고용보험이 사회안전망으로서 버팀목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데, 이번 코로나 위기 때 그 한계가 여실히 들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고용보험은 근로자를 중심으로 설계된 제도이기 때문에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독립자영자, 특수고용형태종사자(보험판매원, 학습지교사 등), 플랫폼 종사자(배달기사), 문화예술인(작가, 화가, 연극인 등) 등은 얼마전까지도 고용보험에 가입이 안됐었다.
이들이야말로 코로나 위기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국민이지만 정작 고용보험이 도움을 줄 수 없었기 때문에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특별 지원을 하였다.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가 약 2700만명 정도인데, 고용보험 가입자는 현재 약 1400만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용보험의 제도적·실질적 사각지대가 너무 큰 것이 현실이다.
지난달 치뤄진 대선 과정에서 여야의 후보들은 수많은 복지공약을 발표했다. 일부 국민들은 지지를 보냈을 것이지만, 일부 국민들은 재원도 고려하지 않은 퍼주기식 공약이라고 못마땅했을 것이다. 사회안전망과 복지 강화에는 반드시 상응한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증세 문제도 같이 고려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복지 모델로 분류하자면 ‘저부담-저복지’ 국가에 속한다. 우리 국민들의 국민부담률(조세와 사회보험료의 합)은 2019년 기준으로 27.4%로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가장 낮은 국가에 속한다. ‘고부담-고복지’ 국가인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는 45% 내외이다.
한국의 국민부담률은 2000년 20.9%에 불과했지만, 지난 20년간 OECD 국가 중에서는 가장 빠르게 증가하였다. 그리고 저출산·고령화의 심화로 인해 향후에도 국민부담률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차기 윤석렬 정부가 향후 5년 동안 어떠한 사회안전망과 복지 모델을 가져갈지 국민들의 관심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앞으로 늘어날 국민부담이 비용효과성을 가지려면 사회안전망의 운영을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3대 개혁과제를 뽑으라고 한다면 소득 파악 능력 제고, 4대 사회보험의 적용·징수 일원화, 그리고 고용형태가 아닌 소득으로 가입기준을 변경하는 것이다.
사회보험 급여와 특별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려면 정확한 소득파악이 전제 되어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비근로자들의 소득파악에서는 아직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다. 이를 개선하려면 4대 사회보험료의 징수를 국세청이 담당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지금처럼 4대 사회보험료를 연금연금공단·건강보험공단·근로복지공단이 각각 걷는 방식은 그 비효율이 너무 크다. 지난 10년간 통합징수 방안은 많은 논의가 있어 왔으므로 이제 개혁을 하겠다는 새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정부의 소득파악 능력이 높아진다면 4대 사회보험 가입기준도 고용형태와 근로시간이 아니라 소득기준으로 바꿔야 한다. 갈수록 근로자와 비근로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플랫폼 종사자, 1인 사업자, 그리고 주당 15시간 미만을 일하는 파트타임 근로자가 늘고 있다. 따라서 4대 사회보험의 가입기준도 이제는 소득기준으로 바꾸어 고용형태와 일하는 시간에 관계없이 주당 일정 소득 이상을 벌면 가입토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30~40년 전 마련된 현재의 사회보험 틀로는 변화된 노동시장 환경을 담아내는 데는 커다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코로나 위기가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혁들이 성공적으로 완성된다면 개인이 낸 세금과 사회보험료가 제대로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쓰여질 것이기 때문에 증세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도 보다 쉽게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증세는 바로 신뢰(trust)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