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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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한국은행이 최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또 올렸다. 표면적 이유는 물가상승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원-달러 환율 방어다. 미국 이자율이 계속 오르는데 우리 이자율을 묶어 두면 더 높은 금리를 찾아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작년 1100원대의 원-달러 환율이 올해 1월 1200원대를 돌파하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다음부터 1250원대를 중심으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연준이 이자율을 올리고 있으니 이에 맞춰 우리 한국은행도 이자율을 따라서 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말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와 2008년 말의 금융위기 때에도 우리는 유사한 경우를 보아왔다. IMF 경제위기 때에는 결국 외화가 바닥나서 IMF의 긴급 수혈을 받고 간신히 국가부도를 막았다.
국내 이자율 인상은 환율을 방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전기요금 수준은 환율에 어떤 영향을 주냐는 것이다. 지금처럼 전기요금이 연료비보다도 싼 상황이 지속된다면 전력소비 역시 증가해서 LNG와 유연탄 등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연료 구입비가 커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LNG, 유연탄 등 에너지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전기요금 수준이 지속된다면 필요 이상의 에너지 수입을 불러들여 외화 유출의 폭이 커지고 환율은 올라가게 된다.
에너지가 우리 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국제유가 수준에 따라 대략 전체 수입액의 1/4∼1/3 사이다. 금년처럼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경우 에너지 수입액은 전체 수입액의 1/3을 넘어설 것이 분명하다. 지난 1분기는 3월 최대 수출을 기록하고도 40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14년만이다. 에너지 가격이 2배 이상으로 급등하면서 에너지 수입액도 역대 최대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국은행이 이자율을 올려도 이처럼 싼 전기요금으로 에너지를 흥청망청 써버리면 환율을 방어하기는 역부족이다.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인해 해외 여러 나라도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이탈리아 55%, 프랑스 24.3%, 영국 22.4% 등 급격한 요금인상이 단행되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전기요금을 인상한 것은 전기소비에 대한 시그널을 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외국인 투자자의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한 적절한 가격 시그널을 제공하기 위해 이자율을 올린 것처럼 주요 OECD 국가들도 전기요금 인상을 통해 에너지 소비에 대한 가격 시그널을 제공한 것이다.
전기요금과 분명히 다른 점은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라는 독립적 의사결정기구를 통해 자율적 판단에 따라 이자율을 올렸다는 점이다. 전기요금 인상도 이처럼 독립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전기요금을 독립적으로 결정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한다. 미국의 경우 각 주의 공익산업규제위원회(Public Utility Commission)에서 전기요금 등 네트워크 산업의 요금을 독립적으로 결정하며 이는 법원의 1심 역할을 한다. 이에 불복하면 2심 법원에 항고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전기요금 결정은 독립된 의사결정기구가 아닌 행정부의 판단에 따른다. 형식상으로는 전기위원회가 한전 이사회가 의결한 전기요금 인상안에 대한 인가권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전 이사회는 이미 정부 부처가 협의하여 결정한 전기요금 인상 수준을 의결하고 인가를 신청하는 요식행위만을 밟는다.
전기요금은 지난 정부에서 이미 몇 차례 올렸어야 했다. 탈원전·원전 가동률 저하·과도한 신재생에너지 목표 등 에너지 정책의 밸런스를 잃어버린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대선을 앞두고 작년부터 급등한 국제 에너지 가격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 한전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의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이번 여름에는 동아시아에 폭서가 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올봄 인도지역을 강타한 더위로 히말라야의 눈이 많이 녹았기 때문이다. 전력수급까지는 그럭저럭 넘길 수도 있겠지만 전기를 많이 팔수록 커지는 한전의 적자는 올여름 이후 감당할 수 없을 수준이 될 수 있다.
이제 대선도, 지방선거도 끝났다.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