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4차 산업혁명과 개인정보 보호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8.25 10:31

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2022082501001046200044211

▲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영국에서 스마트 계량기 설치 반대 시위가 벌어진 일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전력 생산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전력망 안정과 환경에 도움이 되는 스마트 그리드 구축을 위한 계량기 설치에 왜 반대할까 의아했다. 알고 보니 가정에 설치된 계량기에서 전력 사용정보가 기업이나 정부로 전달되면 언제 출퇴근하고, 몇 명이 사는지 등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어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전 세계가 팬데믹의 공포에 사로잡혀있던 코로나사태 초기 우리나라는 위치 추적을 통해 선제적으로 확진자와 접촉자를 파악했다. 해외에서는 이에 대해 개인의 개인정보가 과도하게 노출된다는 비판적 보도가 나오기도 하고, 동일한 추적 시스템 도입이 좌절되기도 했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민감도는 이처럼 사회마다 다르지만,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불과 20년 전에는 학교 졸업앨범에 학생들과 교사들의 성명, 사진은 물론이고, 주소와 연락처까지 기재되어 있었지만 이젠 주소나 연락처가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교사들의 동의 없이는 사진도 실을 수 없게 되었다.

이처럼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지만,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 개발이나 데이터 기반 서비스 산업의 확산은 개인정보에서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 요구되는 개인정보의 활용 필요성이 커지는 만큼 정보주체인 개인들의 정보 보호에 대한 목소리도 이에 대응해 커지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최근 추가 정보 없이는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가명정보를 결합전문기관이 자체 결합하는 범위를 조정하거나 영상·음성 등 비정형 데이터의 가명처리 절차를 마련하는 등 규제 혁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개인들의 영상 데이터 학습을 통해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업체에 개인정보보호 관련 자문을 한 적이 있다. 우리 법제가 원칙적으로 요구하는 정보주체의 개별적인 동의를 넘어 해당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해서 활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봤지만,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가명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에서도 비정형 데이터는 명확한 처리 방안이 없으므로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으라는 일반론만 기재되어 있었다.

주로 정보주체의 동의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 개인정보보호 법제에서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영상에 대해서 개인에게 정보처리에 대한 개별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 목적 외 이용, 제3자 제공을 위해서는 그에 따른 별도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활용의 제약을 정책적으로 완화하고자 한 것이 가명정보이다. 그럼에도 가명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은 실무적으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동의 만능주의에 기울어 있다.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사용되는 가명정보는 데이터 기반 경제 발전을 위해 유용한 수단이다. 다만 유럽의 GDPR(일반개인정보보호규졍)에서도 가명처리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가명정보 자체에 대한 정의는 따로 없다. 식별 가능성이 없는 익명정보와 달리 가명정보는 개인정보임에도 사회 전체의 공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그 활용을 확대했기에 더욱 세심한 처리 절차와 보호 규정이 적용되어야 한다.

정보주체인 개인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동의 없이 가명처리되어 활용되는 경우 혹시 재식별될 수도 있으므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이는 헌법상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기초로 개인정보보호법 제37조에 개인정보 처리정지 요구권으로 구체화되어 있고, 가명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에서도 인정한다. 그런데 개인정보보호법 제28조의7은 이미 가명처리가 끝난 가명정보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처리정지 요구권을 배제하고 있다.

결국 개인은 자신의 정보가 가명처리되어 가명정보가 되기 전까지의 짧은 기간만 처리정지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들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가명정보가 된 후 재식별되어서야 비로소 이를 인지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이러한 권리는 사실상 무용한 것이 된다.

우리는 새로운 제도 도입 여부만 두고 오랫동안 갑론을박을 거듭하다가 어설픈 제도를 급박하게 시행하곤 했다. 가명정보 관련 제도도 미흡한 제도를 성급하게 시행하다가 가명정보가 재식별되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가명정보를 도입한 취지를 살리되 정보주체인 개인의 정보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미묘한 시소의 균형점을 계속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성철환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