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력 수요 삼성, 재생에너지 산업 이끈다…업계 "악재 속 단비"
직접구매시장 활성화로 재생에너지 민간 수요 확대…"공급·가격이 변수"
▲삼성전자가 지난 2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IFA)에서 친환경 전시회를 개최한 모습. |
[에너지경제신문 이원희 기자] 재생에너지 업계가 삼성전자의 RE100(기업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캠페인 참여 선언으로 악재 속에서 ‘단비’를 맞았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IT 제조사 중에서 전력 사용량이 가장 많아 그만큼 재생에너지 전력을 많이 필요로 한다. 재생에너지 전력 수요가 늘어 그만큼 가격이 오를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정부 주도로 성장했던 재생에너지 시장이 민간 중심으로 성장할 것으로 분석됐다.
◇ 삼성전자, 글로벌 IT 제조사 중 최대 전력 수요…재생에너지 산업 이끈다
삼성전자는 15일 ‘신(新)환경경영전략’을 발표해 2050년까지 RE100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해외를 포함한 총 전력 사용량은 25.8TWh로 글로벌 IT 제조사 중에 가장 많다. 이는 서울시 전체 가정용 전력 사용량 14.6TWh의 1.7배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국내 전력 사용량은 18.4TWh 정도로 알려졌다. RE100을 달성하려면 18.4TWh의 재생에너지 전력을 국내에서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녹색 프리미엄’ 제도를 활용, 기존 전기요금에 웃돈을 얹어주고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전력을 공급받고 그 만큼의 전력에 대해 재생에너지 공급분으로 인정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녹색 프리미엄’으로 구매해 재생에너지 공급으로 인정받은 전력량은 약 0.5TWh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국내 전력 사용량 추정치 중 2.7% 수준이다.
현재 국내 RE100 이행 방법은 △자체 조달 △직접 전력구매계약(PPA)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녹색프리미엄이 있다.
삼성전자는 가전과 모바일 사업부인 DX(디바이스경험) 부문은 2027년까지 국내외에서 RE100을 달성할 계획이다.
다만 삼성전자 관계자는 "국내 전력 사용량과 구체적인 RE100 이행 방법은 대외비로 공개되지는 않는다"며 "국내 모든 RE100 이행방법을 활용해 RE100을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 직접구매시장 활성화로 재생에너지 민간 수요 확대…공급·가격이 변수
삼성전자의 RE100 선언으로 재생에너지 전력의 민간 수요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SK·LG 등도 앞서 RE100 참여를 밝혔다. 국내 4대 그룹이 모두 RE100을 선언한 것이다.
재생에너지 산업이 그간 정부 주도의 지원 정책으로 발전해왔다면 앞으로는 보다 자생력 있는 민간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정부는 현재 발전 공기업 등 대규모 발전사들이 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토록 하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가 대규모 발전사를 통해 재생에너지 수요 시장을 만들어 재생에너지 발전업체의 생산 전력을 비교적 장기간(통상 20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조절 입장을 분명히 했다. RPS 의무공급비율의 하향을 예고했고 국무조정실이 정부 합동으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불법 전수조사 등을 실시했다.
재생에너지 업계로선 각종 악재가 겹쳐 오는 상황에서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의 RE100 추진으로 숨통이 트이게 된 것이다. 대기업의 재생에너지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부는 또 발전 공기업 등을 거치지 않고 한전을 통해 재생에너지 전력을 구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발전공기업 등 대규모 발전사들의 RPS 수요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삼성전자 등 민간기업과 재생에너지 전력 구매계약을 채결해 새로운 판매처를 찾을 수 있다.
다만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제시됐다. 한전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총 43TWh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사용량 18.4TWh 2.3배 수준이다.
앞으로 삼성전자를 포함 4대 그룹 등 국내 대기업들이 RE100 달성을 위해 본격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보에 나설 경우 재생에너지 전력은 턱 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뿐 아니라 대규모 발전사들도 RPS에 따라 재생에너지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의 RE100 참여로 당장은 재생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분석됐다.
재생에너지 생산 전력이 부족하더라도 웃돈을 주고 한전에서 일반 전력을 사올 수 있는 ‘녹색 프리미엄’ 제도를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전이 ‘녹색 프리미엄’ 제도를 통해 마냥 ‘부도수표’만 발행할 순 없다. 녹색 프리미엄을 통한 한전의 전력 판매량도 재생에너지 공급량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재생에너지 보급의 지속적인 확대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통해 전체 국내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오는 2030년까지 21.5%로 늘리기로 했다. 지난해 재생에너지 비중이 7.5%였으니 앞으로 8년 내 3배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 21.5%의 발전량은 132.3TWh다. 윤석열 정부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는 전임 문재인 정부의 최종 목표 30.2%에 비하면 8.7% 낮아진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가 비록 낮아졌지만 대기업의 단계적 RE100 이행 등을 고려하면 삼성전자의 RE100 선언으로 당장 재생에너지의 수급을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날 RE100 도전을 선언하면서 국내 재생에너지의 공급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적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한 뒤 정부에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와 정책적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생산라인을 계속 증설하고 있어 전력 사용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핵심 반도체사업장이 자리 잡은 한국은 재생에너지 공급여건이 상대적으로 안 좋아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고 밝혔다.
삼성에 따르면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지난해 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0%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다국적 비영리 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과 ‘CDP(Carbon Disclosure Project)’가 발표한 ‘RE100 2020’ 연례보고서는 재생에너지 전환이 어려운 10개국에 한국을 포함했다. ‘RE100 2021’ 연례보고서에서는 한국에서 사업을 영위 중인 국내외 RE100 가입 기업 53개사 중 절반 이상인 27개사가 한국을 ‘재생에너지 조달에 장벽이 있는 국가’로 꼽았다.
재생에너지 가격도 주요 국가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블룸버그 발전단(LCOE)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태양광 kWh당 LCOE는 한국이 116원으로 중국 42원, 미국 48원의 3배에 가깝게 비싸다.
재생에너지 구매 추가 프리미엄 비용도 지난해 평균 기준으로 1kWh당 한국이 43원으로 중국과 미국 1.2원의 40배가 넘게 비싸다. 한국은 지난 2020년 REC 거래시장 평균 금액이고 중국은 i-REC 거래 평균 금액, 미국은 자발적 배출권 평균 금액을 기준으로 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발표를 통해 "단순히 에너지 구매자로서의 기업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동종 업계와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라며 "원활한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사회적 공동 노력이 필수"라고 밝혔다.
wonhee4544@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