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최석영 부국장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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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2050년 넷제로’와 ‘RE100(재생에너지 100%) 이니셔티브’ 동참을 골자로 하는 ‘신(新)환경경영전략’을 발표했다. 이는 구글과 애플, 인텔, TSMC 등 글로벌 주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SK와 현대차, LG그룹 등 국내 4대 대기업 가운데 마지막 RE100 가입 선언이다.
언뜻 삼성전자가 환경을 소홀히 하는 기업인 것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친환경 노력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생각은 금세 사라진다.
지난 1992년 고(故) 이건희 명예 회장은 환경문제에 대한 중요성을 내다보고 ‘삼성경영선언’을 했다.
삼성은 당시 환경에 대한 지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으로 각종 환경문제를 산업현장에서 추방하는 ‘클린 테크, 클린 라이프’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또 삼성은 2005년엔 ‘환경 중시’를 삼성의 5대 경영원칙 중 하나로 정해 책임을 다했으며, 2009년엔 ‘녹색경영비전’을 발표하고 직·간접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친환경 제품 확대 등을 추진해 왔다.
이를 계승한 것이 이번에 발표된 ‘신환경경영전략’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환경 문제를 생각하는 삼성은 왜 RE100 가입을 늦춰야만 했을까.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국내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원활한 공급에 한계가 있고, 발전 단가와 구매 프리미엄(REC)도 매우 비싸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ICT 제조기업으로 연간 25.8TWh(2021년, 400만 가구 전력사용량)의 전력을 사용하는데, 이를 모두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경우 관련 시장에 큰 파장도 우려된다.
삼성의 RE100 이니셔티브에 가입으로 재생에너지 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남에 따라 녹색프리미엄과 REC 등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게다가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비중 축소 계획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지난달 30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에 따르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21.5%로, 지난해 확정한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상의 비중(30.2%)보다 8.7%포인트 줄었다. 이는 원전 비중을 32.8%로 NDC상 비중(23.9%)보다 대폭 올린 대가다.
재생에너지 수요는 커지는데 공급은 되레 줄이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전력 사용량이 막대한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섣불리 탄소 중립을 외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재생에너지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아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대안도 마땅치 않았다. 제대로 된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공급 받으려는 시도가 자칫 회사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이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재용 부회장이 결단을 내린 것은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에 대한 글로벌 사회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만간 회장 승진이 예상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무게감을 더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공식 석상에서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가자" 등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발언을 이어왔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 기조와는 큰 차이가 있다. 미국과 유럽 등의 주요국들은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에 모든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내 산업계에 파장을 몰고온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EU의 ‘역외보조금(Foreign Subsidies) 법안’ 등은 모두 자국의 친환경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정부는 부디 어려움 속에서도 RE100에 나선 삼성전자의 결단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친환경 강화 기조에 발 맞추기 위해서라도 재생에너지 전략 수정에 나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