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B-넷플릭스 법정다툼에서 업계도 참전 논리 싸움
국회 과방·문체위 20일 각각 공청회 열고 의견 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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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윤상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대외협력실장,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20일 오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정보통신망 이용료 지급 관련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심사를 위한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정희순·윤소진 기자] 망 이용대가 법안을 두고 통신업계와 콘텐츠업계가 국회에서 맞붙었다. 통신업계는 구글·넷플릭스 등 빅테크 기업들의 ‘무임승차’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들에게 망 이용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콘텐츠업계는 이 법이 도리어 국내 콘텐츠 산업의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며 반발했다.
◇ ‘망 이용대가’ 두고 ISP vs. CP, 국회서 격전
2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공청회를 열고 ICT(정보통신기술) 업계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이번 공청회는 과방위 차원의 첫 공청회로, 현재 국회에는 망 이용대가와 관련한 7건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ISP(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 등 통신업계와 CP(콘텐츠제공사업자) 측이 참석해 설전을 벌였다. 당초 과방위는 망 이용대가 문제와 관련해 직접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SK브로드밴드(SKB)와 넷플릭스 측에 공청회 참석을 요청했으나, 양측 모두 직접 참여하지 않고 관련 협회와 학계 등을 통해 진술인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ISP 측 입장을 대변하는 쪽에서는 ‘망의 유상성’을 주장하며 CP들도 망 이용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인터넷이 모두의 것이라 하더라고 결국은 누군가 구축하고 관리·운영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며 "ISP가 망의 이용을 허용했다고 하더라도 망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윤상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대외협력실장도 "통신사업자가 깔아놓은 망을 이용하는 경우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시장의 원리"라며 "인터넷 트래픽 대부분을 유발하는 일부 초대형 CP들이 이런 인터넷 거래 질서를 부정하며 인터넷 생태계가 위협받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CP측 진술인들은 해당 법안이 통신사업자의 배만 불리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인터넷은 모두가 정보 전달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 것인데, 망 하나 깔아놨다고 전 세계 아무도 받지 않는 대가를 받겠다는 것은 통신사업자의 주머니만 두둑하게 해주는 꼴"이라며 "법안이 통과되어 트래픽에 따른 CP사들의 비용 부담이 커지면, 결과적으로 이는 ‘디지털 쇄국’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망 접속비용을 받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라며 "통신 시장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를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계약관계를 정립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 같은 시각 문체위 토론회에선 "개정안 절대 안 된다"
같은 날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망 이용료’ 문제를 콘텐츠 산업의 입장에서 다루는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이 의원은 토론회 개회사에서 "그동안 법률개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통신사 뒤에 가려져 콘텐츠사업자 입장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었다"라며 "과방위가 우리 토론회와 같은 시간에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개정안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법학자들을 비롯해 외교부 국립외교원 소속 국제통상 전문가, 국회입법조사처 소속 입법조사관 등이 참석해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신홍균 국민대 법학과 교수는 "‘망 이용료’ 논쟁을 신제도주의 경제학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ISP와 CP라는 두 진영 간의 영역 다툼으로 해석할 수 있다"라며 "망 이용대가 입법안은 이 다툼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것인데, 이 사안이 사적자치의 원칙을 거스르면서 굳이 입법을 해야 할 만큼 중대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국제통상 전문가로 토론회에 참석한 이효영 국립외교원 부교수는 "(개정안과 같은) 보호주의적 성격의 통상정책은 상대국의 보복 조치 우려가 있고, 도리어 우리 콘텐츠 산업에 대한 수출 장벽이 세워지는 꼴이 될 수 있다"라며 "미국이 한미FTA 규범 위반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비효과로 글로벌 통상 환경 전반에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말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다자적으로 국제규범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이라며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세 사례를 참고해 오늘날의 디지털 경제 시대에 적합한 규제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황성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사실상 이 개정안이 ISP 수익창출 이외에 공익적 차원의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더군다나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재판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입법 시도를 하면 국회가 재판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모양새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의 핵심은 현재의 망으로 트래픽 감당이 어려운 것인 만큼, 개정안에는 ISP가 CP사로부터 받은 망 이용대가를 망 고도화 및 효율화를 위해 쓰도록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담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도 개정안 추진에 대한 우려의 뜻을 내비쳤다. 최재원 문체부 방송영상광고과 과장은 "우리나라 CP들이 해외에 진출할 때 역차별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데, 이것이 굳이 입법을 추진해야할 만큼 시급한 문제인가 의문이 든다"라며 "개정안을 추진하는 데 있어 콘텐츠사업자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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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망 이용대가’ 관련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사진=정희순 기자) |
업계 안팎에서는 ‘망 이용대가’ 법안이 빠르게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콘텐츠업계가 강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데다 여당이 과방위 회의 자체를 보이콧하고 있어 실제 법안 처리까지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설명이다.
다만 통신업계에서는 자율주행차나 커넥티드카 등의 상용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해결책을 찾아야한다고 보고 있다. 데이터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향후 망 이용대가 등은 민감한 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지금 당장에야 SKB와 넷플릭스 간 소송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일 뿐이지 추후 자율주행차 등이 상용화가 되고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며 "지금 당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미래를 보고 교통정리를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hsjung@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