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금리인상 속도전, 돈줄 막힌 부동산 개발시장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9.26 08:49

에너지경제 송재석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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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에서 올해 남은 기간 여신을 타이트하게(엄격하게) 관리하라고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관련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시중은행 한 지점장은 최근 얼어붙은 시장 상황을 이같이 요약했다. 경제 상황, 돈의 흐름을 재빠르게 포착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시중은행이 4분기 부동산 PF 대출을 비롯한 대부분의 여신을 엄격하게 관리하라고 일선 영업점에 주문한 것이다. 금리 인상 여파로 부동산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진데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공사비까지 불어나면서 시행사들이 금융사로부터 신규 PF 대출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기존 대출을 연장하는 것도 녹록치 않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증권, 보험, 카드 등 금융사들이 저금리, 부동산 시장 활황에 힘입어 부동산 PF 대출 규모를 크게 늘린 것이 몇 년 전의 일이다. 부동산 개발 수요 증가와 비은행권의 사업다각화, 대체투자 수요 등이 맞물린 영향이다. 특히나 물류센터의 경우 최근 3, 4년간 개발과 공급이 크게 늘면서 국내 부동산 PF 중에서도 알짜 물건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우리 경제가 본격적인 침체에 빠져든다는 신호들이 감지되면서 부동산 시장이 공급 과잉 우려에 직면했고, 전국 주택종합매매가격(아파트·단독·연립주택)의 하락세와 거래 급감도 장기화되는 모습이다. 시행사들이 지금처럼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공사 중단은 물론 자금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형 시행사들은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금융사 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곳은 비은행권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은행, 보험사, 여전사, 저축은행, 증권사 등 금융권의 PF 대출 잔액은 112조2000억원이다. PF 대출은 2014년 이후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연평균 14.9% 증가했다. 은행과 보험사는 대형사업자를 중심으로, 저축은행과 증권사는 중소규모 사업장 중심으로 PF 대출을 취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증권사는 유동성 제공 외에 신용위험까지 부담하는 신용공여형 보증을 주로 늘리면서 유동성 확보 부담 외에 신용위험에 대한 노출도도 상대적으로 크다.

금융사들이 PF대출에 대해 더욱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는 원인은 금리인상에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인상 기조가 지속될 경우 부동산 및 건설경기 침체가 깊어지면서 대출의 건전성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자칫 부동산 PF에 익스포져가 높은 금융사들은 부실전이에 따른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PF 대출 부실에 대한 우려가 가라앉기 위해서는 각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정점을 찍어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가파른 금리인상 속도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3회 연속 0.75%포인트 인상하면서도 물가가 확실히 잡히기 전까지는 금리 인하를 고려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이 다음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추가적인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도 높아진 상황이다. 글로벌 금리 인상에 대한 고통이 시장의 예상보다 장기화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금융사들이 부동산 PF를 까다롭게 보는 것은 금리인상이 촉발한, 부실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부동산 PF를 바라보는 금융사의 기조는 ‘대출 봉쇄’에만 해답이 있지 않다. 금융사가 부동산 PF에 대한 대출을 전면 중단할 경우 사업성이 좋은 PF까지 불가피한 피해를 입게 된다. 악성 매물들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소화돼야 하지만, 담보가치 안정성이 높은 우량 물건들까지 가차없는 칼날을 들이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과거와 달리 한층 높아진 국내 금융사의 리스크 관리 능력, 사업에 대한 유연성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할 때다.

mediasong@ekn.kr
송재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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