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신재생에너지 산업 '홀로서기'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10.16 15:40

에너지경제 구동본(에너지환경부장/부국장)

구동본

▲구동본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뚜껑만 살짝 열었는데 벌써 썩은내 진동이다. 아직 헤집고 찬찬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앞으로 본격적인 조사와 수사가 이뤄지면 부실과 비리가 얼마나 더 나올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무조정실이 최근 전임 문재인 정부 5년 간 신재생에너지 지원사업의 일부를 들여다봤다. 대상은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나간 관련 지원금 12조원이었다. 해당 기금은 국민이 내는 전기요금에서 일부를 떼 조성하는 일종의 세금이다. 이 지원금을 집행한 전체 지방자치단체 226곳에 대해 일부는 전수, 일부는 12곳 표본을 뽑아 점검한 결과 문제 투성이다. 불법·부당 사례가 2267건이었다. 문제된 지원금도 2616억원에 달했다.

태양광 부문에서 비리가 확인된 지원금 만도 1800억원대에 달했다. 전력기금을 부당하게 지원받았을 것으로 의심되는 376명은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과정에서 친환경을 내세워 사실상 세금 도둑질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 것이다. 복마전이 따로 없다. 국무조정실은 범정부 태스크포스를 구성, 관련 예산 사업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금융 당국도 신재생에너지사업 대출의 부실 확인에 착수했다. 금융감독원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이뤄진 태양광 발전 사업 관련 금융권 대출액이 16조3000억원, 펀드 설정액은 6조4000억원이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민낯이 곧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엔 새만금 해상풍력발전 사업이 중국계 회사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는 소식도 나왔다. 놀라운 것은 사업권 매각 위기에 있는 이 새만금 해상풍력발전 사업 추진 법인의 실제 소유주다. 그는 일반 사업가도 아니다. 새만금이 위치한 전북의 국립대 현직 교수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 전신으로 에너지정책을 총괄하는 지식경제부의 해상풍력추진단 등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와 그 가족 등이 지분 참여해 자본금 1000만원으로 설립된 법인이 최종 팔리면 7000배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고양이에 생선가게를 맡긴 것이다. 한 마디로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한 요지경 세상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사업 점검에 여태 손 놓고 있다가 지금 와서 웬 호들갑인가.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대표 에너지 정책이었다. 일각에서는 운동권 세력의 ‘비즈니스 운동장’이란 비아냥까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혈세가 들어간 태양광 사업의 ‘이권 카르텔’ 의혹을 제기했다. 집권 이전부터 이미 대대적인 점검과 수사가 예고된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최근 신재생에너지 사업 점검과 수사는 좋게 봐서 정책 바로 잡기다. 나쁘게 보면 정책 뒤집기의 일환이다. 의례적인 푸닥거리처럼 된 전 정권 적폐 청산의 성격도 엿보인다. 그래서 그 결과가 실체보다 부풀려져 전 정권을 악마화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로선 억울할 법도 하다. 하지만 현재로선 미리 제대로 점검하고 청소하고 정리하고 대비하지 못한 것을 자책할 수밖에 없을 뿐이다. 정권이 바뀌면 대체로 모든 걸 털고 간다. 전 정권의 잘못을 떠안고 가다간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쓸 수 있어서다. 전 정권에 대한 적폐 청산이든 정치 보복이든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그 정당성을 떠나 모든 상황 자체가 ‘내로남불’로 맞불을 놓으면 딱히 반박하기도 어렵게 됐다. "너네는 안 그랬냐,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다"고 하면 뭐라 둘러댈 것인가. 피장파장인 셈이다.

재생에너지는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화 시대에 꼭 필요하다. 요즘 문제 되는 공급망 붕괴 때 에너지 자립 섬이나 다름없는 국내에서 에너지 수급 위기를 넘을 대안이기도 하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선 그 게 적어도 간접적인 밥줄일 수 있다.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RE100 캠페인이나 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시하는 ESG 경영은 글로벌 기업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우리 기업이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고 상품을 해외 시장에 내다 팔려면 재생에너지를 써서 제품을 만들고 기후환경 변화 대응 등에 노력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보급의 속도와 폭이다. 도로는 국도인데 고속도로로 착각해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 달리면 결국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음식도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법이다. 좋고 필요하다고 해서 모두가 가능한 게 아니다. 대안이나 대책 없이 무조건 좋은 것만 추구할 수 없다. 그냥 이상만 쫓으면 무책임한 포퓰리즘(인기영합)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과속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2030년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21.5%로 잡았다. 문재인 정부의 최종 목표보다 8.7% 포인트 낮춰 속도조절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산업부는 윤석열 정부의 낮춰진 목표마저도 도전적이고 달성이 쉽지 않다고 지금 와서 뒤늦게 실토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그간 사실 땅 짚고 헤엄치기, 봉이 김선달 식으로 추진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재생에너지의 대표 사업인 태양광 발전만 봐도 그렇다. 자기 돈 한 푼 없어도 정부 지원금을 받거나 대출금을 끌어다 발전 설비 갖추고 생산 전기를 비싼 가격에 팔아 수익을 낼 수 있다. 판매 단가도 비싼 데 여기에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도 발급해줘 일종의 보조금까지 챙기게 했다. 발전 공기업 등 대형 발전사를 대상으로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를 도입, 신재생에너지를 20년 간 비교적 높은 고정가격에 안정적으로 사주도록 했다.

요즘 같이 연료비 폭등으로 전력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상황에선 그 혜택까지 덤으로 누릴 수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등과 동일한 가격으로 사주는 게 이유다. 태양광 또는 풍력 발전은 햇빛과 바람 등 자연 자원을 활용한다. 화석연료 가격 변동과 무관하다. 그런데도 화석연료 가격 급등에 덩달아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원래 단맛 나는 곳에 쉰 파리 떼들이 꼬이는 법이다. 돈 되는 사업이니 오염되지 않고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치 세력까지 기웃거린 흔적도 보인다. 사방에 구린내 풀풀 난다.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감시와 점검, 나아가 관리와 수사는 문재인 정부 때 이미 철저히 했어야 했다. 정권의 관심사나 국정과제라면 더 엄밀한 감시·점검·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런 시스템에 구멍이 났다.  시스템이 망가지니 성역이 만들어졌다. 당시 정권 담당자들이 숙제 검사를 제대로 못 했거나 안한 것이다.  결국 남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됐다. 당연히 검사의 강도는 세졌다. 검사의 방식은 적패청산 형태로 전개되는 모습이다.

꿀 단지 있는 곳의 문단속을 잘못한 대가다. 도둑은 울타리를 단단히 쳐 놓아도 넘어가기 십상이다.  빗장을 허술하게 해놓았으니 사고 안 나는 게 이상하다. 재생에너지 사업은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구조다. 자생하지 못하고 외부 지원으로 버틸 수 있게 돼 정부 의존적인 산업 체질을 갖게 됐다.

그 사이 재생에너지 보급과 산업이 따로 놀았다. 온통 보급 목표 달성에 쫓기면서 재생에너지 보급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산업 생태계 육성은 뒷전으로 밀렸다.  뒤돌아 보면 문재인 정권 때 보급 속도전까지 펼치면서 재생에너지 산업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국내 관련 산업 기반의 취약은 값싼 외국산 부품의 국내 시장 잠식을 불러왔다. 그나마 경쟁력 있는 몇몇 대기업들은 국내 시장을 외면하고 해외로 눈을 돌렸다.

신재생에너지사업도 복지가 아니라 하나의 산업이다. 외부 의존적이어서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 독자적인 비즈니스 생태계의 마련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사업이 정부 지원 없이도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산업 기반을 점차 갖춰 나가야 한다. 규모의 경제로 민간 기업의 투자금이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라는 얘기다. 제도를 단순히 미세 조정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신재생에너지 정책 전반을 재검토하라.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물길을 내 흐르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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