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도서] 정의의 시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12.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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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이우의 희곡작품 ‘정의의 시대’에 등장하는 주인공 정의태의 극중 설정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의태는 ‘오인 사살’이라는 하나의 장치로 인해 타깃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라는 압제의 상징을 죽이지 못했다.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일본인 고위 관료 둘을 죽이게 된다.

여기에서 독자들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도발적인 딜레마가 발생하게 된다. 과연 의태는 ‘정의’를 행한 것일까, ‘살인’을 한 것일까. 그는 ‘사건’을 일으키고 이제 일본의 법정 앞에 선다. 그는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할까. 독립의병일까, 살인자일까.

의태는 타겟이 아닌 엉뚱한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괴로워한다. 그는 ‘정의의 경계’를 늘 예민하게 생각하는 의병이었다. 이토 히로부미 암살 이전, 그는 임무에 실패를 하고 돌아오게 된다.

타깃은 이완용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가 가족들과 함께 있어서 죽일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군인은 오직 타겟에게만 폭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아이들과 부인에게는 폭력은커녕 심리적인 상처조차 입힐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불의’와 ‘죄’는 오직 당사자에게만 있다는 논리였다. 그렇기에 의태의 오발탄과 그로 인해 죽은 두 명의 일본인은, 그가 간직하던 정의관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일까.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의태에게 그의 동료 형두는 사망자가 일본인 ‘고위 관료’라는 점을 계속해서 주지시킨다. 그들은 일본의 압제를 앞장서서 견인하는 수뇌부이기 때문에 모두 죽어 마땅한 이들이라고 말이다.

그는 자신이 살인자라는 오명이 아닌, 오직 독립의병으로만 명예를 간직한 채 사형을 당하길 바란다. 평생을 정의로운 의병에 목숨을 걸었기에 인생의 마침표를 살인자가 아닌 독립의병으로 찍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앞날은 순탄치 못하다. 계속해서 그를 부정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변호사 다이스케, 검찰관 사쿠타로, 감옥을 같이 쓰는 죄수, 관동부도독 곤페이, 사망자의 아내 나나코, 미리엘 신부 등.

어쩌면 우리는 어쩌면 극단주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정치적 진영, 종교적 믿음, 젠더 갈등, 성 정체성, 비건과 환경 문제, 그리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한국만해도 분단이라는 극단주의에 사회 전체가 경도돼 있다.

모두가 자신의 정의만을 정의라고 부르짓는 시대다. 정의의 불편한 지점들을 자꾸만 직시하고 또 건드리게 만든다. 이우는 정의태의 눈을 통해 우리의 시대를, 극단주의를 아니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제목 : 정의의 시대 - 하얼빈의 총성
저자 : 이우
발행처 : 몽상가들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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