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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전쟁과 수난’에서는 전쟁과 국가폭력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의해 망각된 민초의 삶을 살피는 지은이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강제 동원된 라인연방 출신 야코브 발터의 연대기를 분석한 글이 그런 예다.
이 진귀한 기록에서 지은이는 혁명의 열광, 해방, 자유 같은 추상적 슬로건이 아니라 신앙에 의지한 채 생존을 위해 전력을 다한 ‘개인’을 보여준다. 1819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정치 개혁을 요구하던 군중을 향해 기병대들이 칼을 휘둘러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피털루 학살 사건’, 영국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인도인 수백 명이 살해된 1919년 인도 암리자르시 ‘잘리안왈라 공원 학살 사건’은 영국 민주주의 흑역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2부 ‘근대의 성취, 근대의 한계’에서는 영국 국가사를 넘어 지역사 또는 문명사로까지 눈길을 돌린다. 산업혁명이 곧 화석 문명의 문을 열어젖혔음을 지적하면서 자연의 수탈 필요성을 증대시켰다고 진단했다. 콜레라와 황열병의 만연으로 전염병 예방을 위한 국제공조가 이뤄지는 과정을 살핀 ‘전염병과 국제공조의 탄생’이라고 해석했다.
3부 ‘동양과 서양’은 영국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역사가 아놀드 토인지,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이순탁 연희전문 교수의 여행기를 축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 동서양이 상대를 보는 시선을 비교·분석한다. 여기서 일본의 봉건 지배층이 근대화를 위해 2000년 이상 지켜온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은 데 대해 감탄하는 영국 지식인들을 만날 수 있다.
‘백조의 노래’라는 표현이 있다. 백조는 죽기 직전에 노래한다는 북유럽의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작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지은 시가나 가곡 등을 가리킨다.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 지은이의 ‘백조의 노래’다. 뜻하지 않게 일찍 세상을 떠난, 우직할 정도로 견실하고도 엄정했던 역사학자의 마지막 글들이다.
제목 : 나의 공부는 여기서 멈추지만 - 역사가 이영석이 남긴 서양사 담론
저자 : 박진한
발행처 :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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