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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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과 교수 |
얼마 전까지 한전 적자문제로 시끄럽더니 이번에는 난방비 문제로 옮겨 붙었다. 원인은 둘 다 비슷하다.국제 에너지가격의 급등과 경직된 우리의 요금규제방식에서 비롯됐다. 2021년까지만 해도 kWh당 100원 근처이던 도매전력가격이 2022년 들어 200원으로 오르더니 작년 12월에는 270원까지 폭등했다. 도매가격의 90% 이상을 결정하는 천연가스 가격 급등이 가장 큰 원인이다. 대부분 가스에 의존하는 난방비 문제도 마찬가지다. 에너지가격이 오르다 보니 여기저기 시비가 일어난다. 그러나 이미 봐왔던 것처럼 국민들의 정서를 달래는 쪽으로 대응하고 있다. 얽혀있는 고리를 풀고 바로잡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때다.
에너지문제를 바라보는 정책결정자 소위, 정치권과 정부의 시각과 해법은 오랫동안 별로 변한 것이 없다.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정부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급급하다. 사실 모두가 원인과 해법을 알고 있지만 실행하는 사람은 없다. 진단과 처방이 다른 이중적인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임시방편식 대응과 효과가 불확실한 구먹구구식 지원책이 반복되고 있다. 세금으로 막든, 빚을 내서 막든,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러는 사이 공기업의 적자는 눈덩이로 불어나고 있다.
국내에서 에너지분야는 다양한 이슈가 표출되고 있으며, 당장 국가적 의사결정과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온실가스 감축, 환경오염 저감, 안정적 공급력 확보, 전력품질 유지, 공급비용 최소화, 에너지산업 육성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정파나 이해관계에 따라 한쪽으로 기울어진 부정확한 정보와 왜곡된 주장의 영향을 받고 있다. 사실 일반 국민은 에너지 수급의 메커니즘이나 에너지원별 공급비용을 세세히 알기는 어렵다. 그저 언론이나 SNS를 통해 보고 들으며 동조하기 십상이다. 탈원전도 재생에너지도 전기요금도 난방비도 많은 부문이 그런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전원의 경제성 문제만 보더라도 미래의 비용을 판단하는 문제인데 과거의 잣대로 평가한다. 요금 문제도 재화의 수급과 가격신호를 제쳐둔 채 에너지비용이나 보편적 공급이라는 부수적인 관점에서만 보고있다.
우리나라에는 주관부처, 에너지 공기업, 국책연구기관, 대학, 단체, 산업체 등에 에너지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수십 년 동안 실력을 쌓아온 전문가도 적지 않다. 근래 들어 에너지에 대한 논쟁은 많으나 심도 있는 보고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 진영이나 이해관계에서 벋어난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작은 목소리 마저 행정력과 이런저런 규제권력에 막혀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한다. 이제라도 중립성과 투명성이 확보된 기구를 통해 정파나 이익집단에 휘둘리지 않는 전문가 중심의 독립적 거버넌스 체계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세상은 혼자만의 힘으로 살 수 없다. 에너지문제도 마찬가지다. 환경과 기술, 시민의식의 변화로 인해 에너지 이용과 공급방식에 대한 선호와 선택이 변하고 있다. 또 국가마다 처한 환경과 과거의 유산도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거 화석연료에만 의존하던 시대에는 부존자원에 따라 국가의 기술선택이 달라졌다. 과거 자원이 풍부한 캐나다·노르웨이는 수력, 영국은 가스, 미국과 중국은 석탄을 각각 최대 에너지원으로 활용했다.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일본과 한국은 에너지원간 균형 즉, 적정 전원믹스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산이 밀어닥치면서 국가들의 선택도 변해가고 있다. 에너지산업에도 ‘시대정신’이 투영되면서 친환경과 에너지절약이라는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우리는 지난 수십년간 에너지문제 대응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미 1980년대부터 전력수급계획을 만들어 왔고, 2000년대 이후에는 국가에너지계획을 통해 미래를 전망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그러나 계획의 그늘에서 시스템은 망가지고 작동을 멈추었다. 수급계획은 전시용으로 전락했고 가격신호는 고장난 지 오래다.
포퓰리즘인지, 정략적 의도인지 엉뚱하게도 전기요금을 틀어쥐고 흔드는 통에 가격신호는 먹통이 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에너지가 줄줄 새고 있다. 말로는 에너지절감을 외치지만 스위치만 누르면 되는 값싼 전기가 있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동안 ‘제대로 된 에너지규제기구가 필요하다’, ‘요금조정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전력시장을 개선해야 한다’,‘전력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목이 아프게 소리쳤지만 메아리조차 없다.
이제라도 정상화를 향해 나가야 한다. 에너지문제는 편법과 미봉책, 묘책과 임기응변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말이 있다. 에너지 전력산업은 이미 오랫동안 가랑비뿐만 아니라 소나기를 맞고 있는 형국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바로잡아야 할 때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프라와 인력, 그리고 노하우를 활용하여 에너지산업의 정상화를 위해 나가야 한다. 더 이상 임시방편으로 일관하며 헛되게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