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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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한국의 노동시장에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잘 알려져 있다. 기업이 한 사람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려면 4대 보험, 근로시간, 육아휴직 등 챙길 것과 제약은 많으나 해고는 쉽지 않다. 그래서 기업들은 정규직 고용을 기피한다. 이런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유연성을 높이면 오히려 정규직 고용이 늘고 노동자의 평균적인 생애 소득도 늘어난다는 것이 노동시장에 유연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노동시장의 규제를 없애 정규직 채용에 대한 기업의 두려움을 없애야 고용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가 우리 가스시장에도 적용된다. 한국은 천연가스 생산이 거의 없어서 해외에서 LNG를 수입해서 쓴다. 해외의 LNG 수출업자가 산지에서 천연가스를 액화하는 엄청난 인프라 비용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미리 수요처와 맺는 20년 내외의 장기계약은 현물시장이나 단기계약에 비해 비교적 그 가격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장기계약은 물량이 크고 한 번 맺으면 돌이킬 수 없다. 때문에 신중하게 향후의 수요를 예측한 후 맺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장기계약에 모두 의존할 수는 없다. 현실은 계획과 다르고 변수는 항상 생기기 때문이다. 조금 부족하게 장기계약 물량을 정하고 모자라는 물량은 현물시장이나 단기계약으로 해결해야 한다. 현물가격과 단기계약 가격이 장기계약보다 높으므로 이 모든 것을 감안해 적절한 수준의 장기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우리 가스시장의 첫 번째 경직성은 가스공사의 장기계약 물량을 향후 15년간 장기수요를 예측하는 장기천연가스수급계획에 따라 결정하는 데서 기인한다. 문제는 수요의 반에 가까운 발전용 수요예측이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전망한 LNG 발전량과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기저설비의 정상적인 완공을 전제로 LNG 발전량을 계산하지만, 기저설비의 준공이 지연되면 모자라는 전력 생산량을 LNG 발전이 메워야 하므로 결국 계획 대비 실제 LNG 발전량은 증가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탈원전 정책으로 LNG 발전량이 갑작스럽게 증가해 천연가스 현물시장 도입물량이 늘어났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급등한 LNG 현물가격이 반영되며 LNG 도입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이는 이번 겨울 난방비 급증의 한 원인이 됐다.
가스시장의 두 번째 경직성은 LNG 직도입 물량의 재판매 금지에서 비롯된다. LNG 도입의 과부족 물량을 사고파는 시장이 개설되면 비싼 해외의 현물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가스공사와 직도입 사업자끼리 수요예측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된다. LNG 직도입 물량의 재판매를 금지한다고 해서 자가용 직도입 사업자의 물량이 크게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 2005년 2개였던 LNG 직도입 사업자는 2020년 8개로 늘었고 전체 LNG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4%에서 22.1%로 증가하였다. 어차피 자가용 물량의 증가 추세는 거스를 수 없다.
첫 번째 경직성을 풀기 위해서는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얽매이지 말고 가스공사가 장기계약 물량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과소예측된 LNG 발전량 규모가 장기천연가스수급계획에 반영돼 가스공사의 손발을 묶지 않도록 해야 한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2036년 LNG 발전설비 비중은 44.7%지만 발전량 비중은 9.3%에 그쳐 가동률의 심각한 미스매치와 LNG 발전량의 과소예측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가스공사가 장기계약 물량에 제약을 받으면서 LNG 직도입 물량이 꾸준히 증가해 온 셈이다.
두 번째 경직성을 풀기 위해서는 가스공사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직도입 사업자의 무임승차 논란을 살펴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LNG 도입업자가 이를 인프라 사용비용으로 분담할 수 있도록 가스공사가 인프라 부문에서 부담하는 공익적 비용을 투명하게 산정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가스공사와 직도입 사업자의 이해를 모두 고려하고 무엇보다 가스 소비자의 편익을 고려하는 가스시장의 유연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장이 사후적(事後的, ex post)으로 자유로우면 사전적(事前的, ex ante) 효율성이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