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9시간’ 여론 악화에 근로시간 개편안 암초
최저임금·법제도 개편 ‘동력 상실’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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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의 한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정부의 ‘노동 개혁’이 시작부터 삐걱대면서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개혁의 첫 걸음 격인 주 52시간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여론 악화로 중단되자 최저임금제 보완, 중대재해처벌법 등 법 제도 개편 등 다른 쟁점에 대한 ‘민심’을 확인하느라 바쁘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은 정부의 첫 노동 개혁 정책이 ‘주 69시간’ 프레임에 갇히며 무산된 것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앞서 수차례 진행된 설문조사에서는 주 52시간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게 다수 의견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근로시간 인식 조사’를 보면 응답자(702명) 10명 중 6명(60.1%)은 연장근로를 엄격하게 규제하기보다 필요할 때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경련이 이달 초 20~30대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다.
국내 주요 경제단체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근로시간 개편안 보완을 지시한 이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재계에서는 경직된 근로 환경 자체를 ‘개혁’한다는 본래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들의 더 큰 걱정은 정부가 ‘중점 추진 과제’라며 호기롭게 시작한 노동 개혁 자체가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부가 여론의 눈치를 보는 모습을 계속 보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 대통령이 "주 60시간 이상은 안된다"고 발언한 게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현행 주 52시간제 아래에서도 탄력근무제도를 활용하면 특정 주에 최대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윤 대통령 뜻대로라면 기업 입장에서 오히려 근로시간 규제가 더 까다로워지는 셈이다.
재계가 원하는 노동 개혁 의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최저임금의 인상 속도를 진정시키고 ‘지역·업종별 차등적용’ 등 유연화된 임금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 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처벌 중심으로 구성된 법 제도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기업의 대응 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국내 중기업의 44.6%, 소기업의 80.0%가 여전히 해당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중 보완이 시급한 규정으로 ‘고의·중과실 없는 중대재해에 대한 면책규정 신설’(65.5%)을 가장 많이 꼽았다고 전했다.
재계는 근로시간 유연화와 임금체계 개편 등이 기업 경영과 일자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대한상의가 최근 502개사를 대상으로 ‘정부 노동시장 개혁 기업 의견’을 취합한 결과 응답 기업의 79.5%는 노동 개혁이 완수되면 기업 경쟁력이 향상된다고 밝혔다. 신규채용 및 고용안정 등 채용시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한 기업도 80.7%였다.
해당 조사에서 기업의 53.0%는 정부가 추진해야 할 가장 시급한 노동개혁 과제로 ‘합리적 노사관계 구축’을 들었다. 구체적으로 ‘불법·부당행위에 관한 법과 원칙 확립’(49.4%),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31.5%),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29.5%), ‘직장점거 전면금지’(24.3%) 등 의견을 내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여론을 살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노동 개혁 같은 정부의 핵심 정책이 제대로 시작도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