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중국이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키우는 전략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러시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에 호응했다. 그러나 달러제국을 구축한 미국의 반격도 만만찮을 것이다.
중국과 브라질이 양국 간 교역에서 달러를 배제하고 위안-헤알로 거래하기로 합의했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이달 중순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룰라 대통령은 상하이 신개발은행(NDB) 연설에서 "매일 밤 나는 왜 모든 국가가 달러로 거래해야 하는지 자문했다"면서 "왜 우리는 자국 통화로 무역할 수 없는가"라고 말해 중국 지도층을 기쁘게 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시진핑 주석은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났다. 사우디는 이른바 ‘페트로 달러’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국제 원유 거래는 어김없이 미국 달러화로 이뤄진다. 그런데 사우디가 수출하는 원유의 4분의 1가량은 중국행이다. 이걸 위안으로 바꾸면? 페트로 달러는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위안을 기축통화로 키우는 대장정(大長征)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은 과연 달러를 왕좌에서 밀어내고 그 자리에 위안을 앉힐 수 있을까?
◇ 어떤 통화가 기축통화인가
김이한 등은 공저 ‘화폐 이야기’에서 기축통화와 국제통화를 분리해서 설명한다. "개인이나 국가 특히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중앙은행들이 당해 통화로 표시된 자산을 널리 보유하면 그 통화는 국제통화라 할 수 있다." 달러, 유로, 파운드, 엔, 위안 등이 국제통화다.
기축통화는 국제통화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널리 사용되는 통화다. 바로 달러다. "세계 외환거래의 85%가 달러로 이뤄지고, 전세계에서 발행되는 해외 채권 가운데 50% 이상이 달러 표시 채권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의 60% 이상을 달러 표시 자산으로 운용하고 있다."
더 쉽게 설명해 보자.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해 12월 미 특공대가 토굴에 숨어 있던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생포했다. 후세인은 100달러 지폐로 75만달러를 숨기고 있었다. 후세인은 왜 이라크 돈이나 유로, 엔, 위안이 아니라 달러를 들고 있었을까? 달러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환영받는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 달러는 어떻게 기축통화 지위를 차지했나
근대적인 의미의 기축통화는 영국 파운드가 스타트를 끊었다. 파운드는 1차 세계대전(1914~1918년) 전까지 글로벌 넘버 원 통화였다. "1899~1913년 사이에 각국의 외환보유액에서 파운드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4배 이상 증가했고, 전세계 외환보유액의 약 40%를 차지했다."
1차 세계대전은 영국과 파운드화의 몰락을 불렀다. "영국은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폐를 남발했고, 이로 인해 파운드화의 가치는 불안정해졌다." 이어 1931년 파운드를 금으로 바꿔주는 금 태환을 정지하자 파운드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쳤다.
미국은 이 공백을 파고 들었다. 다른 나라들도 달러를 대안으로 보기 시작했다. 1930년대 대공황이 터지자 달러는 잠시 움찔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로 거듭났다. 달러는 명실상부한 기축통화의 지위에 올랐다."
◇ 기축통화의 특권
1960년대 프랑스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재무장관은 달러가 누리는 특혜를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이라고 비판했다. 올바른 지적이다. 기축통화가 누리는 특권은 상상을 초월한다.
먼저 주조차익(시뇨리지)이 있다. 미국 조폐국이 100달러 지폐를 인쇄하는 비용은 몇 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100달러 지폐를 수중에 넣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상품 또는 용역을 제공해야 한다. 미국 국채도 마찬가지다. 종이 채권에 1000달러를 인쇄하면 그 채권은 곧바로 1000달러 값어치를 갖는다. 횡재가 따로 없다. 그런데도 외국인들은 달러 지폐와 미국 국채를 갖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기축통화국은 유동성 위기에 처할 염려도 없다. 달러가 모자라면 인쇄기로 찍으면 그만이다. 미국은 재정적자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도 경제는 잘 굴러간다. 재정에 펑크가 나면 국채를 발행해서 돈을 조달하면 된다. 미국은 무제한 마이너스통장을 마음대로 굴리는 세계 유일의 나라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위기의 진앙은 미국이다. 그런데 각국이 오히려 달러를 확보하느라 열을 올렸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비교하면 모순투성이다. 외환위기 때 원화 가치는 바닥을 뚫고 내려갔다.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임에도 불구하고 달러는 오히려 상종가를 쳤다. 한국 금융시장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덕에 가까스로 안정을 찾았다. 이게 바로 기축통화의 힘이다.
◇ 차근차근 준비하는 중국
"아시아인 다섯 명과 미국인 한 명이 조난을 당해 무인도에 갇혔다. 아시아인들은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열심히 일했지만 미국인은 가만히 앉아 그들이 해주는 음식을 먹었다. 다 먹은 후에는 달러라는 ‘휴지조각’으로 음식값을 지급하고 아시아인은 미국인이 먹고 남은 음식을 먹어야 했다."
중국 언론인 장팅빈이 쓴 ‘기축통화 전쟁의 서막’ 한국어판 서문에 나오는 글이다. 달러에 대한 적대감이 진하게 묻어 있다.
중국은 달러제국을 무너뜨리려 치밀한 전략을 펴고 있다. 먼저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나라와 통화스와프를 맺었다. 한국은 2020년 양국 통화스와프 규모를 기존 560억달러에서 590억달러, 기간은 3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 한·중 통화스와프는 원화와 위안화를 맞교환하는 구조다.
2016년은 중국 화폐사에 특기할 만하다. 이 해에 국제통화기금(IMF)은 위안을 특별인출권(SDR) 바스켓(구성통화)에 추가했다. 이로써 위안은 달러, 유로, 엔, 파운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통화로 공인받았다. 2022년 8월 이후 위안이 바스켓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2.26%로, 달러(43.38%)와 유로(29.31%) 다음으로 높다.
시진핑 주석이 2013년에 내놓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도 위안 국제화를 측면에서 지원한다. 일대일로 사업엔 100개가 훨씬 넘는 국가가 참여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세웠다.
중국은 2015년 위안화 국제결제 시스템(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을 구축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은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곧 달러 무역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조처를 취했다. 달러의 무기화다. 러시아는 곧바로 중국이 제공하는 결제망으로 갈아탔다. 양국 간 교역은 루블과 위안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중국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브라질 등 지역 맹주국에 손을 뻗치고 있다.
◇ 미국이 특권을 순순히 내놓을까
미국은 1차 대전 이후 한 세기에 걸쳐 달러제국을 구축했다. 미국이 이 특권을 순순히 내려놓을 리가 없다. 21세기 들어 중국에 대한 견제는 갈수록 거칠어지는 추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고율 관세 장벽을 쌓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등 첨단기술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다.
미국은 최강국 지위를 위협하는 나라를 그냥 두지 않는다. 일본 경제가 한창 잘 나가던 1985년 미국은 G5(서방 주요 5개국) 재무장관 모임에서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 직후 엔화 가치는 달러당 200엔대에서 100엔대로 급등(환율은 급락)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의 터널에 빠진 출발점을 플라자 합의로 본다.
중국이 달러 패권에 노골적으로 도전할 경우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 새우등 터지지 않으려면
통화 패권이 파운드에서 달러로 넘어가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1914년 미국의 경제 규모는 영국의 4배에 달했지만 무역 거래와 자본 거래는 여전히 파운드화로 계약되고 결제되었다"(‘화폐이야기’). 대공황 직후인 1931년엔 외환보유고 비중에서 파운드가 달러를 앞지르는 재역전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달러가 기축통화로 확실하게 자리잡은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이때 미국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제력을 구축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아직 미국에 미치지 못한다. 올해 기준 미국의 70%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파운드-달러 사례를 보면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을 압도적으로 제칠 때 비로소 위안이 달러를 누를 수 있다.
네트워크 효과도 중국이 넘어야 할 벽이다. 지난 100년 간 지구촌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쓰는데 익숙해졌다. 습관은 관성적으로 지속된다.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와 폐쇄적인 금융 시스템도 중국이 풀어야 할 숙제다.
국제금융 권위자인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UC버클리대)는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에서 복수의 통화가 동시에 기축통화로 기능하는 때가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올 것으로 내다본다. 만약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는다면? 그것은 중국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 금융위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등 그릇된 경제정책을 펴기 때문일 것이라고 아이켄그린은 말한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는 중이다. 기축통화 경쟁도 그 중 하나다. 달러제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 위안 역시 야금야금 영토를 넓혀갈 게 분명하다. 우리로선 행여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지 않도록 유연한 전략을 세우는 게 현명하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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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국빈 방문한 브라질 룰라 대통령이 4월1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두 정상은 양국 간 교역에서 달러 대신 자국 통화를 사용하는 데 합의했다. 사진=EPA/연합뉴스 |
중국과 브라질이 양국 간 교역에서 달러를 배제하고 위안-헤알로 거래하기로 합의했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이달 중순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룰라 대통령은 상하이 신개발은행(NDB) 연설에서 "매일 밤 나는 왜 모든 국가가 달러로 거래해야 하는지 자문했다"면서 "왜 우리는 자국 통화로 무역할 수 없는가"라고 말해 중국 지도층을 기쁘게 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시진핑 주석은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났다. 사우디는 이른바 ‘페트로 달러’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국제 원유 거래는 어김없이 미국 달러화로 이뤄진다. 그런데 사우디가 수출하는 원유의 4분의 1가량은 중국행이다. 이걸 위안으로 바꾸면? 페트로 달러는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위안을 기축통화로 키우는 대장정(大長征)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은 과연 달러를 왕좌에서 밀어내고 그 자리에 위안을 앉힐 수 있을까?
◇ 어떤 통화가 기축통화인가
김이한 등은 공저 ‘화폐 이야기’에서 기축통화와 국제통화를 분리해서 설명한다. "개인이나 국가 특히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중앙은행들이 당해 통화로 표시된 자산을 널리 보유하면 그 통화는 국제통화라 할 수 있다." 달러, 유로, 파운드, 엔, 위안 등이 국제통화다.
기축통화는 국제통화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널리 사용되는 통화다. 바로 달러다. "세계 외환거래의 85%가 달러로 이뤄지고, 전세계에서 발행되는 해외 채권 가운데 50% 이상이 달러 표시 채권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의 60% 이상을 달러 표시 자산으로 운용하고 있다."
더 쉽게 설명해 보자.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해 12월 미 특공대가 토굴에 숨어 있던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생포했다. 후세인은 100달러 지폐로 75만달러를 숨기고 있었다. 후세인은 왜 이라크 돈이나 유로, 엔, 위안이 아니라 달러를 들고 있었을까? 달러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환영받는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 달러는 어떻게 기축통화 지위를 차지했나
근대적인 의미의 기축통화는 영국 파운드가 스타트를 끊었다. 파운드는 1차 세계대전(1914~1918년) 전까지 글로벌 넘버 원 통화였다. "1899~1913년 사이에 각국의 외환보유액에서 파운드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4배 이상 증가했고, 전세계 외환보유액의 약 40%를 차지했다."
1차 세계대전은 영국과 파운드화의 몰락을 불렀다. "영국은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폐를 남발했고, 이로 인해 파운드화의 가치는 불안정해졌다." 이어 1931년 파운드를 금으로 바꿔주는 금 태환을 정지하자 파운드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쳤다.
미국은 이 공백을 파고 들었다. 다른 나라들도 달러를 대안으로 보기 시작했다. 1930년대 대공황이 터지자 달러는 잠시 움찔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로 거듭났다. 달러는 명실상부한 기축통화의 지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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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달러화는 기축통화로서 ‘과도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
◇ 기축통화의 특권
1960년대 프랑스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재무장관은 달러가 누리는 특혜를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이라고 비판했다. 올바른 지적이다. 기축통화가 누리는 특권은 상상을 초월한다.
먼저 주조차익(시뇨리지)이 있다. 미국 조폐국이 100달러 지폐를 인쇄하는 비용은 몇 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100달러 지폐를 수중에 넣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상품 또는 용역을 제공해야 한다. 미국 국채도 마찬가지다. 종이 채권에 1000달러를 인쇄하면 그 채권은 곧바로 1000달러 값어치를 갖는다. 횡재가 따로 없다. 그런데도 외국인들은 달러 지폐와 미국 국채를 갖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기축통화국은 유동성 위기에 처할 염려도 없다. 달러가 모자라면 인쇄기로 찍으면 그만이다. 미국은 재정적자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도 경제는 잘 굴러간다. 재정에 펑크가 나면 국채를 발행해서 돈을 조달하면 된다. 미국은 무제한 마이너스통장을 마음대로 굴리는 세계 유일의 나라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위기의 진앙은 미국이다. 그런데 각국이 오히려 달러를 확보하느라 열을 올렸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비교하면 모순투성이다. 외환위기 때 원화 가치는 바닥을 뚫고 내려갔다.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임에도 불구하고 달러는 오히려 상종가를 쳤다. 한국 금융시장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덕에 가까스로 안정을 찾았다. 이게 바로 기축통화의 힘이다.
◇ 차근차근 준비하는 중국
"아시아인 다섯 명과 미국인 한 명이 조난을 당해 무인도에 갇혔다. 아시아인들은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열심히 일했지만 미국인은 가만히 앉아 그들이 해주는 음식을 먹었다. 다 먹은 후에는 달러라는 ‘휴지조각’으로 음식값을 지급하고 아시아인은 미국인이 먹고 남은 음식을 먹어야 했다."
중국 언론인 장팅빈이 쓴 ‘기축통화 전쟁의 서막’ 한국어판 서문에 나오는 글이다. 달러에 대한 적대감이 진하게 묻어 있다.
중국은 달러제국을 무너뜨리려 치밀한 전략을 펴고 있다. 먼저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나라와 통화스와프를 맺었다. 한국은 2020년 양국 통화스와프 규모를 기존 560억달러에서 590억달러, 기간은 3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 한·중 통화스와프는 원화와 위안화를 맞교환하는 구조다.
2016년은 중국 화폐사에 특기할 만하다. 이 해에 국제통화기금(IMF)은 위안을 특별인출권(SDR) 바스켓(구성통화)에 추가했다. 이로써 위안은 달러, 유로, 엔, 파운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통화로 공인받았다. 2022년 8월 이후 위안이 바스켓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2.26%로, 달러(43.38%)와 유로(29.31%) 다음으로 높다.
시진핑 주석이 2013년에 내놓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도 위안 국제화를 측면에서 지원한다. 일대일로 사업엔 100개가 훨씬 넘는 국가가 참여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세웠다.
중국은 2015년 위안화 국제결제 시스템(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을 구축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은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곧 달러 무역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조처를 취했다. 달러의 무기화다. 러시아는 곧바로 중국이 제공하는 결제망으로 갈아탔다. 양국 간 교역은 루블과 위안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중국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브라질 등 지역 맹주국에 손을 뻗치고 있다.
◇ 미국이 특권을 순순히 내놓을까
미국은 1차 대전 이후 한 세기에 걸쳐 달러제국을 구축했다. 미국이 이 특권을 순순히 내려놓을 리가 없다. 21세기 들어 중국에 대한 견제는 갈수록 거칠어지는 추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고율 관세 장벽을 쌓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등 첨단기술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다.
미국은 최강국 지위를 위협하는 나라를 그냥 두지 않는다. 일본 경제가 한창 잘 나가던 1985년 미국은 G5(서방 주요 5개국) 재무장관 모임에서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 직후 엔화 가치는 달러당 200엔대에서 100엔대로 급등(환율은 급락)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의 터널에 빠진 출발점을 플라자 합의로 본다.
중국이 달러 패권에 노골적으로 도전할 경우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 새우등 터지지 않으려면
통화 패권이 파운드에서 달러로 넘어가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1914년 미국의 경제 규모는 영국의 4배에 달했지만 무역 거래와 자본 거래는 여전히 파운드화로 계약되고 결제되었다"(‘화폐이야기’). 대공황 직후인 1931년엔 외환보유고 비중에서 파운드가 달러를 앞지르는 재역전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달러가 기축통화로 확실하게 자리잡은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이때 미국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제력을 구축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아직 미국에 미치지 못한다. 올해 기준 미국의 70%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파운드-달러 사례를 보면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을 압도적으로 제칠 때 비로소 위안이 달러를 누를 수 있다.
네트워크 효과도 중국이 넘어야 할 벽이다. 지난 100년 간 지구촌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쓰는데 익숙해졌다. 습관은 관성적으로 지속된다.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와 폐쇄적인 금융 시스템도 중국이 풀어야 할 숙제다.
국제금융 권위자인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UC버클리대)는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에서 복수의 통화가 동시에 기축통화로 기능하는 때가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올 것으로 내다본다. 만약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는다면? 그것은 중국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 금융위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등 그릇된 경제정책을 펴기 때문일 것이라고 아이켄그린은 말한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는 중이다. 기축통화 경쟁도 그 중 하나다. 달러제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 위안 역시 야금야금 영토를 넓혀갈 게 분명하다. 우리로선 행여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지 않도록 유연한 전략을 세우는 게 현명하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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