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구시대 유물 지주회사 규제 없애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5.17 08:37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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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

얼마 전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주회사와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에 대해 지주회사 그룹내 자회사간 또는 손자회사간 공동출자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간 공정거래법에서는 지주회사 → 자회사 → 손자회사 → 증손회사라는 단일ㆍ수직적 출자만 허용했다. 삼성·현대차그룹 등 비지주회사 그룹들은 여러 계열사가 공동출자해 하나의 대규모 장애인표준사업장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기업집단은 출자지분 만큼 장애인 고용을 인정받는다. 예를 들어 장애인표준사업장에 고용된 장애인이 100명이고 A계열사의 출자지분이 50%라면 50명을 고용한 것으로, B계열사가 30% 지분을 출자했다면 30명을 고용한 것으로 본다. 이 제도는 규모가 큰 장애인표준사업장을 체계적으로 유지ㆍ관리할 수 있어 영세 사업장에 비해 고용이 안정되고 처우가 좋다는 게 장점이다. 이 같은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은 지난해 말 기준 128개로 6117명의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LG·SK그룹과 같은 지주회사 그룹은 계열사가 공동으로 출자해 하나의 장애인표준사업장 설립은 불가능해 계열사별로 사업장을 따로 둬야 했다. 비지주회사 그룹이 지주회사 그룹으로 전환하는 경우 계열사 공동출자로 운영하던 기존의 장애인표준사업장은 계열사별로 쪼개야 한다. 기업입장에서 기존 장애인표준사업장을 다수의 사업장으로 나눠야 하기 때문에 운영이 복잡해지고 관리비용도 더 많이 들어간다. 장애인들도 갑자기 소속이 바뀌면서 동료와 이별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공정위도 문제를 인식하고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제를 일부 완화하겠다고 하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 시점에서 지주회사에 대한 공정거래법상 규제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주회사 규제는 1986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지주회사의 설립 자체를 금지한 데서 시작됐다. 지주회사를 금지한 데는 일본의 영향이 컸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육본과 재벌 간 관계가 긴밀했고 패전 이후 재벌 해체의 역사를 경험했다. 1945년 11월 점령군 사령부(GHQ)는 최고사령관 각서 ‘지주회사 해체에 관한 건’에서 일본의 지주회사 기업집단을 강제로 해체했고, 1947년 원시독점금지법을 도입해 지주회사의 설립 금지를 법제화 했다.

우리나라에서 지주회사가 허용된 것은 IMF 외환위기 때다. 당시 기업집단의 복잡하게 얽힌 출자구조로 계열사 매각 등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단순한 출자구조로 기업 구조조정이 쉬운 지주회사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허용됐다. 물론 이런 정책 변화에는 일본의 영향도 있었다. 일본은 이미 지주회사 금지 관련 조항을 삭제했다. 입법 당시부터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은 우리나라의 지주회사 제도는 이후 일본의 정책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일본은 지주회사 금지 관련 조항을 삭제하면서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별도로 도입하지 않은 데 비해 우리나라는 지주회사를 활용한 지배력 확장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규제를 뒀다는 게 일본과의 차이점이다. 지주회사 부채비율 제한, 금융사 보유 금지, 자회사ㆍ손자회사 의무지분율, 손자회사 원칙 보유 금지 등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 볼 수 없는 규제가 도입됐다.

우리나라 지주회사 규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미 군정이 일본 전범기업에게 적용했던 규제를 우리기업에게 적용했고 지금은 일본도 폐지한 지주회사 규제를 우리나라는 아직도 유지,더 강화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지주회사 규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지주회사 규제는 당초에 적용 대상도 부적절 했고,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맞지 않는다. 한국경제는 6·25 전쟁 직후 세계 최 빈국에서 지금은 글로벌 10위권 경재대국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아직도 제도나 규제는 과거의 프레임에 갇혀있다. 대한민국의 경제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규제, 갈라파고스 규제는 전면 폐기해야 한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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