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분쟁 부르는 공사비 검증제도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5.24 08:22

박지훈 비욘드법률사무소 대표

박지훈변호사프로필사진

▲박지훈 비욘드법률사무소 대표


최근 철근 등 원자재 가격상승으로 기존에 약정한 공사비만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게 된 상황에 처한 시공사들이 시행자인 조합측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발해 재개발·재건축 등 주택 정비사업지 곳곳에서는 공사비 증액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비사업 조합들은 조합원들의 분담금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무턱대고 공사비의 증액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시공사들은 종종 실제 물가상승분을 넘는 공사비를 증액하려는 시도를 하고, 최근에는 시멘트·철근 등 자재가격 상승을 핑계로 과도하게 공사비를 부풀리는 행태도 보이고 있다.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인한 것인지는 몰라도 한 건설사에서는 설계와 다르게 철근을 빼먹은 사례까지 드러났다.

그러나 정비사업조합은 시공사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공사중단 또는 입주방해 등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루다가 입주가 닥쳐서야 급히 총회를 열어 공사비 증액과 추가분담금 문제를 논의하다 조합 내부 분쟁으로 이어지고 사업이 중단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정비법 제29조의 2에서는 시공사와 조합사이의 공사비 증액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공사비 검증제도를 도입, 시행하고 있다. 공사비 검증은 국토교통부 고시로 마련한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기준에 따라 한국부동산원에서 진행한다. 문제는 시공사가 공사비 검증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 검증결과에 따라 공사비가 조정된 사례도 확인할 수 없어 실효성 없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는다. 더불어민주당 홍기원 의원실 발표에 따르면 이 법에 따라 공사비 검증을 신청한 정비사업장은 2022년 기준 32곳이다. 이는 최초 공사비 검증제도를 도입한 2019년 보다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실제 공사비 검증 결과에 따라 공사비 조정이 이뤄졌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홍 의원은 지난 9일 공사비 검증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내용을 담은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사비 검증결과를 조합원 총회에 공개하고, 공사비 변경계약 때는 검증 결과를 반영했는지 여부와 반영 범위를 의결하도록 하는 한편 공사비 검증의 반영결과를 한국부동산원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했다. 그러나 공사비 검증결과를 반영했는 지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 만으로 과연 공사비 검증 제도가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공사비 검증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시공사는 극단적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추가공사비의 지급을 받을 때까지 조합원 또는 일반분양자들의 입주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 서대문구에서는 법원의 판결에도 추가공사비를 내지 않은 세대의 입주를 방해한 사례가 있다.

따라서 검증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먼저 공사비 검증 결과를 반영하거나 검증 결과를 조정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또 시공사가 공사비 미지급에 불만을 품고 입주를 방해하는 경우 이를 강력히 제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입주를 위해 종전 거주지를 정리하고 이사하는 조합원과 일반분양자들의 경우 분쟁의 해결때까지 말 그대로 길바닥에 나 앉는 상황에 처해 시공사의 주장이 부당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추가공사비를 지급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시공사는 자체적으로도 충분히 정당한 공사비를 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정비사업조합은 공사비가 정당한지 판단할 수 있는 자체적인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공사비 검증의 결과를 반영하는 제도에 더해 시공사가 정당한 범위를 넘는 추가공사비 요구를 하면서 입주를 방해하는 경우 대표자의 형사처벌, 건설업 면허의 박탈, 입찰참여제한조치 등의 추가적인 제재수단의 도입이 필요하다. 물가상승으로 인해 고통받는 건설업계가 정당한 공사비 검증을 통해 적정하게 산정된 공사비를 지급받을 수 있고, 정비사업조합도 적정하게 산정된 공사비만을 지급해 양측이 윈윈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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