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시장주의'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역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6.14 09:58

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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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최근 부동산 열기가 가라앉으면서 서민들에게 싼값에 주택을 공급한다는 취지로 추진하던 지역주택조합사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현재 서울에만 117곳에서 지역주택조합사업이 진행 중인데 이 중 많은 지역주택조합들이 사업성 부족이나 위법·부적정한 사업 추진으로 끊임 없는 민원에 시달리며 좌초 위기에 처해있다. 얼마 전 참여한 서울시의 지역주택조합 실태조사에서 2015년 정비사업조합에 대한 실태점검에 처음 나갔다가 기준 없는 업무처리, 부정이 의심되는 계약 체결, 지출 근거가 없는 회계로 황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나마 정비사업조합들은 도시정비법령 개정과 서울시의 조례 개정, 업무규정 도입으로 업무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지역주택조합의 현실은 이런 개선 전 혼란스러웠던 정비사업조합의 확장판처럼 느껴졌다.

지역주택조합은 도시정비법에 따라 진행되는 정비사업조합과 달리 주택법에 근거해 사업을 추진한다. 인근 지자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모여 조합을 설립해 공동주택을 짓는 방식이다. 주택이 지어질 지역에 토지와 건물을 소유한 사람들이 주로 조합원이 되는 정비사업조합과 달리 해당 지역과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 토지를 매입한 후 건물을 짓는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주택이 들어설 토지를 확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지역주택조합은 사실 서울과 같이 이미 촘촘하게 개발된 곳에서는 사업성 확보가 쉽지 않다. 사업부지의 50%이상 토지의 사용권원을 확보한 뒤 홍보를 통해 조합원을 모집해 80% 이상 토지사용권원과 15% 이상 토지 소유권을 확보해야 조합설립인가를 받을 수 있다. 본격적인 사업 절차인 사업계획승인을 받으려면 95% 이상의 토지 소유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처럼 지역주택조합은 홍보를 통해 조합원을 모집하고, 토지도 완전히 새로 확보해야 하니 정비사업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가입하는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조합원을 모집하는 업체는 조합원 1명 모집할 때마다 보통 2000만∼3000만 원을 받는다고 알려진다. 더구나 주택건설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토지주들에게 유리한 조건의 토지 매매계약계약도 한다. 심지어 과거에는 조합을 대행해 사업을 추진하는 업무대행자 대표가 조합의 임원이 돼 업무대행자에게는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을 하기도 했다. 조합원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사업에 따른 리스크도 많고 불확실성이 큰 것이 현재 지역주택조합의 현주소다.

도시정비법과 달리 주택법은 지역주택조합 설립 전 추진위원회를 법제화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이 임의단체인 추진위원회가 중요한 업무를 많이 한다. 하지만 지역주택조합사업이 민간사업이라는 이유로 비 법인사단인 이 추진위원회는 정부 규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다행히 2020년 7월 주택법 개정으로 일부 규제가 도입됐고 올해 말 주택법 제94조를 고쳐 지도·감독 대상에 지역주택조합을 포함시킨다는 발표도 있었다.

지금도 추진위원회나 지역주택조합은 100억원이 넘는 계약을 경쟁입찰이 아니라 수의계약으로 하고 있다. 도시정비법이 계약 금액과 업무의 성격에 따라 경쟁입찰과 수의계약 등 세밀한 규정을 둔 것과는 대비된다. 개정된 주택법에서 조합원 모집 때 자격기준 설명의무를 부과했는데도 설명자료나 확인서에 가입 자격 요건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앞으로 자격 결격이 확인되면 책임 소재와 가입비 반환과 관련해 법적 분쟁이 예상된다.

주택법의 기저에는 지역주택조합을 민간사업으로 보고 최소한의 규제만 하겠다는 사고가 깔려 있다. 토지소유주들이 조합원이 되는 정비사업은 세밀하게 규제하면서 서민들의 내집마련 통로인 지역주택조합은 시장경제 논리에만 맡기는 것은 곤란하다. "‘원수에게 (조합 가입을) 권한다’는 우스갯소리 마저 나오는 지역주택조합을 이대로 두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내집마련 수요자들의 호소에 정부 당국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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