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태어난 채 죽은 사람이 소주 2병 훔쳤다? 뒤늦게 주민번호·기초수급 받는 60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6.22 19:55
수원지검

▲수원지검 전경.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안효건 기자] 일평생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사망신고 됐던 A(64)씨가 소주 2병을 훔친 계기로 신원을 되찾게 됐다. 검찰은 A씨 주민등록번호를 생성하고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게 도울 예정이다.

2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월 4일 오전 5시 10분께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한 식당 앞에 놓인 박스에서 1만원 상당 소주 2병을 훔쳤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 받은 검찰은 단순생계형 절도사건 기록을 검토하던 중 A씨 신원에 이상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A씨 주민등록 조회가 되지 않자 경찰은 지문 조회로 A씨 신원을 특정했다. 과거 A씨가 저지른 또 다른 범죄 기록에 적혀있던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A씨는 "경찰이 확인한 주민등록번호는 잘못된 것이고, 자신은 이미 실종선고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검찰은 혹시 모를 착오를 방지하고자 A씨 제적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를 확보해 비교해봤다.

실제 A씨는 등본상 실종선고 후 사망한 것으로 간주된 상태였다.

지난 2013년 10월경 서울가정법원이 오래 전 실종신고 된 A씨에 ‘1988년 3월부로 사망한 것으로 본다’는 취지로 선고했던 것이다.

A씨는 출생 후 20여년이 지난 뒤에야 출생신고가 됐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주민등록번호가 발급되지 않을 것으로도 확인됐다.

경찰에서 확인됐던 주민등록번호의 경우 발급조차 된 적 없는 번호였고 A씨 생년월일과도 달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상 기록에서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사망한 사람으로 취급된 것이다.

A씨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한 검찰은 이번엔 그의 신원을 찾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검찰은 A씨에 대한 실종선고 청구인과 면담해 A씨에게 이복동생들이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검찰은 이복동생 구강 상피를 채취해 이들의 DNA 비교분석에 들어갔다.

약 한 달간 신원확인 절차 끝에 검찰은 A씨와 이복동생들 친부가 동일하다는 분석 결과를 받았다. 아울러 이날 A씨 신원 회복을 위해 검사가 직접 수원가정법원에 실종선고 취소 청구를 했다.

A씨가 저지른 소주 절도 사건은 평생 주민등록번호를 발급받지 못해 사회복지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점, 그로 인해 생계형 절도 범행에 이른 점 등을 고려해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상담 및 취업 교육 조건부로 기소유예 처분했다.

A씨가 과거 미납한 벌금도 분납하도록 해 일상생활에 신속하게 복귀하도록 도왔다.

현재 A씨는 정상적으로 분납을 이행하고 있다.

검찰은 향후 법원의 실종선고 취소 심판이 확정되면 △ 피의자 주민등록번호 신규 발급 △ 지자체에 기초수급자 신청 △ 검찰·경찰 관리 전산 시스템에 피의자 신규 주민등록번호 수정 등록 통보 등 지속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검찰 측은 "피의자는 별다른 소득이나 가족이 없이 극심한 생활고와 건강 악화를 겪고 있어 사회 복지혜택을 지원할 필요가 절실할 상황이었으나 주민등록 없이 실종 선고된 사망 간주자이다보니 사회복지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검찰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사건관계인의 인권 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hg3to8@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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