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피해"···인터넷 댓글 ‘허위 정보’ 규제 목소리 커진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7.05 10:55

허위 정보 여과없이 노출돼 사회적 혼란 가중
현대차 ‘악성 댓글’ 6년간 법정 다툼···"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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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연합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악의적 허위 사실 및 미확인 정보가 여과 없이 노출되는 인터넷 악성 댓글에 대한 규제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다양한 형태로 규제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기업들이 피해를 입었던 사례들도 재조명되고 있다.

5일 관련 업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인터넷 댓글 속 악성 허위 및 미확인 정보는 신빙성이 없더라도 관심을 끌만한 자극적 내용들이기에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경향이 있다. 허위 정보를 그대로 수용한 다른 네티즌들의 댓글이 댓글 창을 뒤덮으며 어느새 루머는 팩트로 둔갑하기 일쑤다.

조회수가 곧 수익인 일부 SNS는 악성 허위 정보 확산의 온상으로 꼽힌다. 루머에 대한 확인 대신 구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선정적 제목과 내용 짜깁기를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악의적 허위 정보 확산에 앞장서는 이들을 교통사고 현장에 경쟁적으로 달려가는 견인차에 비유해 ‘사이버 렉카’(Cyber Wrecker)라고 불린다.

악성 허위 정보는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열애설과 불화설, 채무 논란 및 사망설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멀쩡한 사람이 암 환자로 둔갑하는가 하면 올해 초 한 중년 배우는 자신의 사망설에 대해 직접 "살아있다"고 해명해야 했다. 지난해 7월에는 일본 전 피겨 스케이트 선수 A씨가 근거 없는 사망설의 희생양이 됐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피해자는 우울증을 앓거나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지난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20대 배구선수는 자신의 SNS에 "저를 괴롭혀온 악플은 이제 그만해 달라. 버티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인터넷 방송 중 여성 커뮤니티에서 주로 쓰는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과도한 공격을 받다 극단적 선택을 한 BJ의 가족도 "그동안 수많은 악플과 루머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토로했다.

고객과 사회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은 악성 허위 정보 또는 미확인 정보가 담긴 악성 댓글의 여과 없는 확산으로 자칫 회복 불가능한 치명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유명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인 맥도날드의 감자튀김 이물질 의혹 사건은 대표적 사례다. 지난 2월 초 한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감자튀김에서 동물 다리가 나왔다’는 글이 게재됐다. 검은색 물체를 튀긴 듯한 사진은 "쥐 실험을 해봐서 보자마자 쥐 다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일방적인 추정성 댓글이 달리면서 일파만파 확산했다.

당시 업체 측은 "감자에 튀김 옷을 입히지 않는다"며 법적 대응 등 강력 조치를 예고했다. 그럼에도 일부 매체가 네티즌 반응을 옮기며 매출과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 등 곤욕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는 게시글 게재 2주만에 식약처는 "해당 물질은 감자가 튀겨진 것"이라는 공식 분석 결과를 내놨다.

외식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악의적으로 왜곡된 정보들까지 일부 소비자 사이에서 쉽게 확산하고 있지만 기업이 인터넷의 빠른 콘텐츠 유통 속도를 쫓아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심지어 허위 정보임을 입증한 뒤에도 게시글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악성 허위 댓글로 인한 피해는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2016년 A사는 현대자동차가 자신들의 기술을 탈취했다고 주장하며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기술 탈취가 없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사법부는 1심과 항소심, 상고심에서모두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기술 탈취 등 부당한 행위는 없었다는 취지였다.

현대차는 소송이 진행된 기간 동안 ‘협력업체는 안중에 없느냐’ 등 대기업을 향한 근거 없는 비방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기술 탈취 의혹은 벗었지만 악성 댓글은 고스란히 남아있고 작성자 중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밖에 1건 당 1000원을 받고 저질 제품을 ‘최고’라며 홍보해준 전문대행사가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댓글 알바를 고용해 경쟁 입시교육업체와 강사를 비난하는 댓글 20만여 건을 올리도록 한 유명 입시교육업체 대표 및 강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악성 허위 정보 또는 미확인 정보를 담은 비방성 댓글로 인한 사회적 폐해에 비해예방을 위한 규제와 처벌은 미미하다. 형법 제314조에 따르면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 등으로 업무를 방해했다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악성 댓글에 악의적 허위 사실이 포함돼 있는 경우라면 정보통신망법 상 명예훼손으로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도 가능하다.

불특정 다수인댓글 작성자를 일일이 특정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찾아내더라도 200만원 이하 벌금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범의 경우 기소유예 처분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단순 일회성 댓글의 경우 사실상 처벌이 어렵다.

이에 따라 악성 댓글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재발 방지를 위한 경고 효과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현실적 규제 방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플로리다 법원이 문제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 알선 사업을 하던 한 시민에 대해 ‘사기꾼’이라는 악플을 단 여성에게 1130만달러의 배상 판결을 내리는 등 해외 국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시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2021년 가짜뉴스및 악플방지법의 일환으로 고의적 허위 또는 불법정보 작성자에게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지난 몇 년간 댓글 범죄가 치밀하게 전문화하고 일상화된 상황에서 기존의 처벌 체계로는 제대로 된 예방이 어렵다"며 "악성 댓글의 해악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적절한 구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짚었다.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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