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세력의 진화] 세력의 무한증식…이 씨 잡혀도 잔당은 여전히 활개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7.05 15:57

<하> '자본시장의 변종' 세력 규제가 절실



무자본M&A 활용해 수많은 상장사 실질 지배



이해관계 따라 이합집산… 협력과 반목 거듭



이 씨가 주도한 카나리오바이오그룹 아직 시한폭탄



"작전의 고리 끊어내려면 인수합병 규제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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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아바이오 CI


‘쌍용자동차 인수’라는 재료로 당시 인수 주체로 나섰던 에디슨모터스의 주가를 조작해 막대한 차익을 남긴 일당들이 구속 기소됐다. 쌍용차 인수전은 전 국민의 관심 속에서 치러졌고 그 과정에서 불공정거래를 통해 한몫 챙기려 한 일당들이 수면위로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이 일당들의 ‘작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10여년 전부터 주식시장을 배경으로 주가조작과 무자본M&A를 통해 수많은 개미를 울려온 세력이다. 에너지경제는 이번에 구속된 일당 중 전체적인 작전의 그림을 그려온 것으로 알려진 ‘이 씨’에 대해 집중 해부해봤다. [편집자주]


[에너지경제신문 강현창 기자]주식시장의 작전세력이 사용하는 은어 중 ‘펄(Pearl)’과 ‘셸(Shell)’이 있다. ‘펄’은 주가 부양을 위한 재료, ‘셸’은 주가조작의 대상 회사를 말한다.

지난해 쌍용차 인수전을 보면 ‘펄’과 ‘셸’이 뚜렷하다. ‘쌍용차 인수’는 보기 드문 양질의 ‘펄’이었다. 그리고 쌍용차 인수를 ‘펄’로 삼아 에디슨EV(쉘)의 주가를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전직 회계사 출신 이 씨가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동안 이 씨의 행적에 등장한 수많은 동료들이 여전히 시장에 남아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지배하고 영향력을 끼치는 상장사들은 무자본M&A를 통해 세력과 엮인 뒤 시장에 시한폭탄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 카나리아바이오그룹, 관계자 3명 구속에도 우려는 남아


특히 우려되는 곳은 암치료제 오레고보맙을 중심으로 형성된 테마주의 대표격인 카나리아바이오다.

카나리아바이오는 과거 현대사료라는 이름의 상장사다. 이름대로 사료사업을 영위하던 곳이다. 지난해 초 K-OTC에 등록된 카나리아바이오(옛 두올물산)이 코스닥 상장사 현대사료를 인수하고 사명을 카나리아바이오로 바꿨다.

앞서 두올물산은 코스닥 상장사 OQP에서 인적분할해 나온 바이오사업부를 자회사를 통해 인수한 곳이다. 코스닥에 남은 OQP는 현대 디아크라는 이름을 달고 거래정지 중이며, 사업부를 쪼개고 남은 곳은 카나리아바이오엠이라는 이름의 법인으로 출범시켜 K-OTC에 남아있다.

이처럼 이 씨가 손을 댄 상장사와 여러 법인은 단 1~2년 만에 복잡한 분할과 합병, 인수 등을 통해 새로운 사명을 달았다.

최근 카나리아바이오그룹은 세종메디칼과 두원사이언스제약, 헬릭스미스, 리더스기술투자 등 여러 상장사에 지분투자를 집행했다.

이 과정에서 또 무자본M&A가 진행됐다. 카나리아바이오그룹은 기업을 인수하면서 자회사를 통해 CB를 발행하고, 이를 피인수 회사가 매수하는 방식으로 인수 비용을 크게 줄였다.

이 과정에서 이 씨는 ‘고문’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딜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 씨 주변 작전세력, 각자 이해관계로 뭉치고 흩어지며 활개


주식시장에서 오랫동안 ‘세력’으로 활동하던 이 씨가 적극적으로 상장사를 ‘쇼핑’한 것을 두고 금융투자업계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향후 다른 작전에 이 기업들이 새로운 ‘펄’과 ‘셸’로서 활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쌍용차 주가조작으로 구속된 5명 중 3명이 카나리아바이오그룹 관계자들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이 씨외에 카나리아바이오엠의 이창현 대표이사도 이번에 함께 구속됐다. 이 대표는 과거 이 씨가 대표로 있던 마제스타(상장폐지·현 글로앤웰)에서 근무한 바 있다. 이 씨의 구속으로 뒤를 이어 신임 대표가 된 신용섭 전 카나리아바이오엠 상무이사도 마제스타 출신이다.

또 이들과 함께 구속된 회계사 박 씨는 과거 이 씨가 회계사로 활동했던 회계법인 출신이다. 그동안 이 씨 와 함께 일하며 카나리아바이오의 ‘펄’인 오레고보맙의 가치 평가와 과거 이 씨가 대표로 있던 에이루트의 자회사 회사채 발행에 가치평가를 진행한 바 있는 인물이다.

문제는 세력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이 씨가 여러 상장사를 거치면서 인연을 맺어온 인물들이 언급된 상장사나 이들을 지배하는 각종 민법상 조합과 지주사 곳곳에 사외이사나 감사 등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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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배 탔던 세력에게 뒷통수 맞기도… 결국 피해는 투자자 몫


세력은 이처럼 모두 한배를 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면 이산집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씨도 과거 기업사냥에 함께 했던 동료와 사이가 멀어지면서 발목을 잡힌 적이 있다.

지난 2018년 이 씨는 무자본M&A로 상장사를 인수해 수백억원의 뒷돈을 챙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수감생활을 했다.

당시 사건이 수면위로 드러난 것은 한때 이 씨의 동료였던 다른 무자본M&A 전문가 윤 모 씨 ‘덕분’이다.

당시 윤 씨는 기자를 만나 "나보다 수준이 낮은 ‘선수’한테 작전을 당한 게 억울해 검찰에 고발하려 한다"고 말했다. 윤 씨는 이 씨와 공모해 한 상장사의 자산을 빼돌렸지만 자신의 주머니에 떨어진 것은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윤 씨는 당시 이 씨와 함께 진행한 작전의 증거를 모아 검찰에 제출한다. 이 자료를 토대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씨가 결국 꼬리가 잡혔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 그리고 법원의 재판 결과 이 씨는 물론 함께 작전을 펼쳤던 윤 씨도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처럼 작전세력들은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뭉치기도 흩어지기도 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이해관계는 결국 선량한 투자자들의 피해로 결부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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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와 함께 무자본M&A에 나섰던 윤 씨가 지난 2017년 남부지검에 제출한 고발장 표지.


◇ 전문가 "무자본M&A 관련 규제 강화할 필요성 있어"


이처럼 세력들이 주식시장을 교란하고 작전을 펼쳐 부당이익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무자본 M&A에 대한 규제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중론이다.

이 씨는 지난 2017년 기자와 만나 자신의 상장사 인수와 합병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그 자리에서 기업 인수에 사용하는 자금 출처에 대한 질문에 이 씨는 "왜 회사를 돈을 주고 사느냐"며 "회사는 그 회삿돈으로 사는 거지, 내 돈이나 내 회삿돈으로 사는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상식에서 벗어난 답변이지만 세력들에게는 당연한 논리라는 게 문제다.

이 문제는 학계에서도 지적한다. 이 씨가 관여한 무자본M&A 사례를 연구한 최병철 충북대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무자본M&A에 대한 규제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경영권 양수도가 수반되는 기업 지분 인수 및 양도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시와 모니터링 역할이 필요하다"며 "인수자금조달계획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거나, 인수대상 기업의 자산을 이용하는 무자본M&A의 형태로 파악되거나, 외부차입금을 활용하면서 차입처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추가적인 자료의 제출과 정밀한 조사 및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 인수 후에는 인수한 기업의 지분을 담보로 하는 자금 조달을 금지하고, 인수한 기업의 중요 자산을 매각하지 못하게 하며, 자본시장의 보호예수 제도처럼 일정 기간 이상 지분을 재매각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 등 금융규제 당국이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실무적 보완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여기에 덧붙여 투자자에 대한 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끝.

kh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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