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리플 판결'로 본 암호화폐 법제 마련 시급성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7.18 09:05
2023071901001041400050991

▲김한성 마이데이터코리아 이사


지난 13일 오전(미국시간) 뉴욕으로부터 34쪽 분량의 판결문이 공개됐다. 암호화폐 ‘리플(XRP)’과 관련한 미국 감독당국의 소송에 대한 뉴욕 법원(판사 아날리사 토레스·Analisa N. Torres)의 판결 내용이다. XRP가 거래소나 알고리즘을 통해 일반투자자에 판매되는 경우 증권이 아니며,기관투자가에게 XRP를 직접 판매한 것은 증권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 소송은 2020년 1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리플 랩스(Ripple Labs)와 CEO인 브래들리 갈링하우스와 공동 창업자 크리스천 라센 등 2명의 경영진이 XRP를 증권으로 등록하지 않은 채 13억달러의 공모를 진행했다고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SEC는 XRP가 증권으로 분류돼야 하며 다른 증권과 동일한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고,리플은 XRP가 증권이 아닌 디지털 통화라며 SEC가 XRP를 증권으로 간주할 수 있는 공정 고지(Fair Notice)를 제공하지 않았고 XRP를 비트코인, 이더리움과는 다르게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암호화폐 세계에서 이 소송은 3년 가까이 규제의 복잡성과 어려움을 전면에 부각시킨 사건이기도 하다. 법원은 하위테스트(Howey Test)에 따라 이 사건을 해석하고 XRP가 기관 투자자를 모집한 맥락에서는 증권으로 간주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증권이 아니라고 판결한 것이다. 하위테스트는 특정 거래가 투자 계약(Investment Contract, 증권의 일종)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1946년 미국 대법원에서 판단한 기준이다. 판결에 대한 즉각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으로 XRP의 가치는 610원에서 1120원까지 80% 이상 뛰었고 여타 알트코인으로 파급되면서 매틱(Matic), 라이트코인(Litecoin), 솔라나(Solana) 등도 20% 안팎 동반 상승했다. 반면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은 상승폭이 5% 이내로 대조를 보였다.

이번 리플 판결은 감독당국이 암호화폐 관련 기관을 대상으로 한 여러 소송 가운데 처음으로 패소한 사건으로 기록되면서 암호화폐 산업에 주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금번 판결을 중요한 승리로 인식하면서 앞으로 도입될 모든 암호화폐 관련 규제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배적이다. 특히 증권법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법적 선례로 현재 진행중이거나 향후 암호화폐 관련 다른 소송에서 적극적으로 이 판례를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 XRP를 포함한 여러 알트코인을 거래하는 거래소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투자자를 암호화폐 시장으로 끌어들여 수익성과 함께 변동성을 증가시킬 것이다. 한편으로 SEC는 이번 판결로 부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면서 암호화폐 규제에 대한 기존 접근 방식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리플 사례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리플에 대한 증권거래위원회의 3년 가까운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암호화폐인 XRP는 사실상 규제 기관의 엄격한 감독 아래의 증권이라는 족쇄에 얽매였다는 것이다. ‘법이 없는 곳에 자유가 없다’는 홉즈의 주장처럼, 법이 미비한 상황에서 감독당국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행사하는 데 있어 암호화폐 업체의 권리를 언제든지 침해할 수가 있다. 의회가 입법을 게을리하면서 명확하고 충분한 내용을 담은 법령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법원이 나서게 될 것이고 판사의 결정은 바뀔 수 있어 업계에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이는 헌법상 판사의 역할은 법을 해석하는 것일 뿐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행 암호화폐 규제(CryptoReg)는 대부분 전통적인 증권에 맞춰 설계돼 암호화폐의 고유한 특성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현재의 법령이 암호화폐의 잠재적 가능성과 잠재적 함정을 처리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면 보다 명확하고 포괄적이며 공정한 규제 프레임워크를 갖출 수 있도록 의회는 시급히 입법에 나서야 한다.

암호화폐와 관련한 명확하고 포괄적인 법제는 혁신적인 분야가 번창하는 데 필요한 확실성과 안정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소비자를 보호하고 오용을 방지한다. 지금이야말로 암호화폐가 운영되는 일관된 툴을 제공해 권리와 책임을 정의하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절차를 규정하는 한편 규칙을 집행하는 메커니즘을 확립해야 할 시점이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