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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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교수 |
러시아 용병 기업인 바그너 그룹이 반란을 일으킨 지 한 달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 동기나 현 상황 등 분명하게 밝혀진 게 없다. 바그너 반란은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하루 만에 종료되고 반란 수괴인 프리고진이 망명하며 사태가 정리된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후 프리고진이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과 면담했고, 바그너 그룹은 해체되지 않고 벨라루스 주둔지로 이동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배신자를 끝까지 추적해 철저하게 처단하는 러시아의 전통과 달리 이번 반란을 대하는 푸틴의 대응이 예상과 다르게 온건하다.
바그너 그룹의 반란은 러시아 군부의 견제에 불만을 품고 벌인 권력투쟁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바그너는 큰 희생을 감수하고 바흐무트 등 우크라이나 전쟁 격전지에서 전공을 세웠으나 이런 성공에 위기를 느낀 군부가 바그너를 정규군에 편입시켜 무력화하려고 시도했고,이에 프리고진이 격분해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프리고진은 야심가다. 그는 범죄자 출신의 사회 낙오자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푸틴 핵심 세력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푸틴 승인 아래 용병 기업인 바그너 그룹을 조직했다. 바그너는 아프리카와 중동 여러 나라에 개입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 시리아 전쟁에 참전해 전공을 세우는 등 많은 활약을 했으며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큰 공을 세웠다. 큰 정치적 야심을 가진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많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자 자신이 앞으로 러시아 정계를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 푸틴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다는 꿈을 가졌을 수 있다.
러시아 정규군도 상대하기 어려운 대규모 정예 용병 집단을 가진 프리고진이 군부의 견제 때문에 자신의 야망이 좌절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바그너가 없다면 프리고진의 존재 가치와 정치적 야심을 이루기 위한 기반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대중적 인기를 기반으로 러시아 내 지지 세력을 규합해 본인을 견제하는 쇼이구 국방장관 등 군부 핵심 세력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실행 단계에서 난관에 부딪친다. 예상보다 일이 커지자 프리고진은 정치적 타협을 통해 상황을 수습하려했지만 반란의 결과는 실패였다.
이번 사태로 러시아의 취약점이 국제사회에 노출됐고 푸틴의 권위는 손상됐다. 일각에서 이번 반란이 푸틴을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지만, 푸틴에게 충성하는 군부에 대한 도전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과 다름없다. 프리고진은 쇼이구 등 군부 지도자를 제거하면 푸틴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했을 수 있다. 그러나 권위주의 독재 권력자는 일인자인 자신에 도전할 수 있는 실력자의 부상을 막고 부하들의 충성 경쟁을 통한 상호 견제를 권력 유지 수단으로 사용한다. 이는 러시아만 아니라 중국, 북한 등 독재 국가의 특징이다. 프리고진이 인기도 있고 전공도 세웠지만 러시아를 철권통치하고 있는 푸틴이 프리고진을 제2인자로 인정해 본인의 위상과 권위를 스스로 흔드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푸틴은 손상된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것이다. 이번 사태로 국제사회는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확대해 러시아 힘 빼기를 가속할 것이다. 이에 따라 조기 종전 가능성이 희박해졌고 러시아가 승전을 위해 핵무기 사용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은 커졌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푸틴은 바그너 그룹을 존속시킬 것으로 예상한다. 무엇보다 바그너는 실전 경험을 충분히 갖춘 정예 병력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전황에 따라서는 바그너 그룹이 우크라이나 북부 지역에 제2의 전선을 형성할 수 있다. 이 경우 병력과 장비 부족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를 크게 압박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러시아 군부나 다른 정치세력이 권력과 영향력을 강화해 푸틴에 도전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도구로 여전히 가치가 있다. 그러나 프리고진 등 이번 사태 주동자들의 운명은 비관적이다. 아직 활용 가치와 사태 수습 때문에 방치하고 있지만 푸틴은 본인의 권위에 도전한 이들을 용서하기 어려울 것이다.
바그너 반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러시아 국민이다. 전쟁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경제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내부 통제가 더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아직 수습 단계여서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푸틴이 권위를 회복하고 철권통치를 유지할 수도 있지만, 서서히 몰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권위주의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하지만 약점이 노출된 독재 권력은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