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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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
이번 여름에 필자는 국외출장 중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는데 어려움을 여러 차례 겪었다. 시애틀공항에서는 체크인과 보안검색 대기줄이 길어서 항공기를 놓친 여행객을 여럿 봤고 필자도 그 중 하나였다. 미국출장을 마치고 간 에콰도르에서는 출장단 중 2명이나 짐과 사람이 따로 도착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귀국 길에는 출발지연으로 환승을 하는 미국 공항에서 8시간이나 대기하기도 했다. 계속 이어지는 사고, 심각한 지연 등을 목격하거나 겪으면서 미국의 공항시스템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COVID 19 팬데믹 이후에 폭증한 여행객들을 공항이 잘 대처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카운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일 처리가 무척이나 더딘 모습을 보면서 공항의 하드웨어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한다기 보다는 사람들의 작업 능률이 예전 같지 못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주창한 ‘1만 시간의 법칙’을 들지 않더라도 반복이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복은 일처리 지각단위,이른바 ‘스키마의 청크(chunk)’ 단위를 크게 만들고, 이는 일처리 속도를 빠르게 한다. 다시 말해, 특정 자극에 반복된 노출은 한 번에 처리하는 정보의 양을 늘리고, 이는 정보처리 속도를 끌어올린다. 상황에 익숙하게 하는 반복 훈련이야말로 평소의 일처리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은 물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는 경우에도 적응처리를 할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한다.
신입사원이 처음에는 일 처리가 미숙해서 실수도 자주 하고 느리더라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능숙하게 처리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공부도 반복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기에 예습과 복습이 공부 잘하는 비결이라고 귀에 따갑게 들어왔다. COVID 19로 촉발된 온라인 학습 환경 아래서 학습효과를 늘리기 위해 온라인 예습과 오프라인 심화학습을 결합한 플립러닝이 크게 전파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모든 분야에서 실제로 작업이나 지식을 사용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심지어 잊혀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깝게는 고려시대의 청자제작 기법의 맥이 끊기며 여러 장인들이 새로 그 기법을 알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고대인들이 현대 기술로도 만들기 힘든 유물과 유적들을 남긴 것을 보면서 미스테리로 여기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고대의 지식이 제대로 전수 됐다면 인류의 기술과 지식은 지금보다 훨씬 발전됐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많은 분야에서 지식은 왜 후대에 제대로 전수되지 않는 걸까. 기록을 자세히 남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정보와 지식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대개 정보를 지식으로 잘못 이해하면서 오해가 발생한다. 정보는 의미가 있는 단편적인 자료이며, 지식은 이런 정보를 체계화해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한마디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한다’는 우리 속담에서 구슬은 정보이고, 꿰는 것은 지식이다.
지식은 크게 사전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지식을 기술할 때 대부분 사전적 지식으로 기록을 남기기에 실제로 적용을 하려면 절차를 몰라서 아예 어떻게 시작할지를 모르거나 숱한 시행착오를 하기 때문에 자세한 기록만으로는 실행하는데 부족하다. 더군다나 절차적 지식이 자세히 기록돼 있더라도, 문자로 남기거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암묵적 지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식전수는 더욱 어렵게 마련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암묵적 지식이 중요한 사업에는 도제제도가 성행했다. 그러나 도제제도는 많은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다. 현대의 대량생산 체제로 오면서 많은 산업에서 계량화, 표준화를 통해 지식전수의 대량화를 추진했고 사전적 지식, 절차적 지식을 자세히 담아 이른바 매뉴얼화, 시나리오화를 확립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암묵적 지식 또는 내재적 지식을 외재적으로 표출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를 하면 너무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항공분야에서는 고가의 시뮬레이션 비행 연습장치로 조종사들을 훈련시킨다. 항공분야 외에도 모든 분야에서 학습한 사전적 및 절차적 지식을 직접 체험을 하면서 암묵적 지식을 내재화하고 이 토대에서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 강조되는 창의성도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피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반복훈련과 더불어 체험학습을 통해 탄탄한 기초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