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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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
아주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홍콩의 백화점이 세일 기간에 맞춰 우리나라 주부들이 보따리 쇼핑을 위해 홍콩 여행을 다녀 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전부터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기간에 해외직구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60대 할머니도 해외직구를 배워 제품 구매에 나서고 있다.
신용카드 회사들은 이같은 해외직구 특수룰 겨냥한 맞춤형 카드 상품 출시로 고객 끌어들이고 있다. 국내 유통업계가 소비 위축으로 어렵다고 하지만 해외 직구 시장은 여전히 ‘불황 무풍지대’다. 2013년 1조원 수준이던 해외직구 규모가 올해는 6조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직구 방법은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개인통관 고유번호를 사용해 직접 구매하는 해외직접배송, 해외 사이트에서 구매한 제품을 배송대행지(배대지)를 통해 국내 주소지로 배송 받는 해외배송대행, 그리고 최근 대세인 구매대행이 있다. 요즘 네이버, 쿠팡, 11번가 등 국내 온라인 쇼핑 업체들은 자사 사이트에 해외직구 상품을 올려 소비자가 결제만 하면 해외직구가 가능토록 하고 있다. 명품 해외직구도 급성장해 올해 6월 전체 명품 매출중 해외직구 비중이 15%까지 올랐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해외직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상품 구매, 쇼핑 과정에서의 재미 등 복합적이다. 해외 직구는 유통경로가 길어 소비자 가격이 비싸지는 우리나라 유통산업 문제 해결과 지나치게 비싼 수입제품 가격 인하에 도움이 된다.
해외직구 시장의 성장과 함께 온라인 시장에서 해외직구를 둘러싼 국내 플랫폼 업체들의 경쟁이 날로 가열되고 있다. 로켓 해외직구 서비스, 3~5일의 빠른 배송, 편리한 통관절차 등을 내세우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는 국내 업체가 아마존과 연계해 대규모 할인행사를 진행하는 가 하면, 해외 온라인 직구 플랫폼 업체들이 한국어 서비스는 물론 원화 표시, 한국어 상담 제공 등 한국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전략으로 국내 소비자를 공략한다.
그러나 해외직구에는 ‘함정’도 많다. 제품자체는 가격이 싸지만 국제 배송비가 비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즉 국내 가격보다 비싸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해외 직구 제품중에는 우리 나라 소비자들의 체형과 선호 그리고 표시가 달라 구매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다. 미국 신발의 경우 치수 표시가 우리와 다르고, 국내 소비자가 미국 신발 볼의 크기 표시, 바지 길이 및 통의 크기 등도 차이가 있어 제대로 맞는 제품을 구매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반품을 하려면 구입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다.
한국 가격의 반값이라는 말에 가전제품을 구매할 경우 AS가 잘되지 않으며, 설치 비용을 별도로 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110 볼트를 사용하는 국가의 가전제품을 해외 직구로 구매하면 곳곳에 전압기, 일명 ‘도란스’를 달고 살아야 한다. 해외 직구로 가전제품을 구매 한 후 수입업체로 AS를 요청하면 구매한 곳으로 문의하라는 답변이 오기도 한다는데, 독일어도 모르는데 독일 판매처에 문의할 수 있을까? 어떤 소비자는 부품만 주문할 수 있게 해 달라로 요청하는데 "회사 정책상 안 된다"는 답이 들려온다는 지적이다.
어린이 장난감, 스케이트보드, 와플기기 등 해외 인기 직구 제품 중에는 국내 안전기준에 부적합한 제품이 종종 있다. 13세 이하 어린이용 제품의 경우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KC미인증 제품의 유통은 불법이다. 해외 직구 어린이용 제품에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납, 카드뮴 등의 기준치가 초과 검출된 제품, 유아가 삼킬 위험이 있는 작은 부품들이 포함된 제품, 낙하시험 도중 파손돼 내구력이 기준치에 부적합한 제품도 발견된다. 전성분표시제를 지키지 않은 화장품 유통은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불법이다. 국내에서 의사 처방이나 약사를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 국내에서는 위해 성분으로 취급되는 여러 성분들이 들어간 해외 직구 건강보조식품, 항우울제, 케톤뇨증치료제 등의 안전성 문제도 커지고 있다.
해외직구 증가와 함께 구매자의 개인통관 고유부호 도용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해외 직구에서 농수산물, 짝퉁, 장난감 총, 칼 등은 반입 불가이며, 6개를 넘긴 건강보조식품은 과세 또는 반품되며 배송비 포함 해외직구 액수가 15만원이 넘으면 과세 대상이 된다. 사업자가 실수요자인 것처럼 명의룰 도용해 면세로 통과 후 제품을 판매하면 밀수입에 해당하고, 특송물품을 원래 주소지가 아닌 곳에 배달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해외직구에 대한 맹종은 국내 제조산업과 유통산업의 위축으로 이어져 고용감소로 연결된다. 최근 해외직구 과소비를 빗대어 ‘예쓰(예쁜 쓰레기)’라는 신조어 마저 등장했다. ‘과유불급’(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이라는 말이 요즘 해외직구 광풍에 딱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