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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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처럼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변한 것이 별로 없다. 100여 명의 전 정권 임명 인사들이 여전히 공공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공영방송은 더욱 그렇다. 지난 5월 30일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면직되면서 정권교체 1년이 지나서야 겨우 방송개편의 시동이 걸렸다. 그리고 2개월이 지나면서 KBS이사회와 MBC 방송문화진흥원이사장 및 이사들의 면직이 진행되고 있다. 정권교체와 함께 제일 먼저 방송을 장악하고 이후 KBS와 MBC의 모든 시사프로그램의 PD, 진행자, 작가, 출연자들을 교체하며 공영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었던 문재인 정부에 비하면 거북이걸음이 아닐 수 없다.
여론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영방송은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중립성과 독립성이 생명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권교체와 함께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것은 뭐라고 포장해도 반민주적 행태임이 분명하고, 정치권이 작금의 사태를 놓고 방송장악이냐, 정상화냐를 두고 다투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정권을 잃은 쪽은 ‘장악’, 잡은 쪽은 ‘정상화’라 주장하니 논란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는 말이다. 필자가 보기엔 문재인 정부나 윤석열 정부나 똑같이 언론장악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언론장악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그 근본 이유는 박근혜 정부에서의 공영방송은 비교적 여야의 주장을 공정하게 방송에서 다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에 비록 경영진이 박근혜 정부에 의해 임명됐지만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의 가장 큰 노조가 모두 친 민주당 성향이 강했고 자연히 경영진에 대한 견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은 집권 후 3개월 만에 완성됐다. KBS 이사회와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원 이사들에게 압력을 가해 사퇴를 유도했는데, 그때만 해도 집권세력의 막무가내 사퇴 요구가 통했을 때였다. 그런데도 KBS 사외이사였던 강규형 명지대 교수가 강력히 저항하자 말도 안되는 법인카드 불법 사용을 이유로 면직 처분했다. 강 교수는 소송을 냈고 4년이 넘는 외로운 법정투쟁 끝에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면직이 불법이었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경영진 교체 후엔 인사권을 활용해 국장급 인사를 단행하고, 이후 프로그램 개편, PD와 작가 교체 등을 통해 정권에 비판적 인사들을 모두 방송계에서 퇴출시켰다. KBS는 특히 TV와 라디오의 모든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들을 막대한 출연료를 줘가면서 외부인사로 채웠는 데, 그들이 모두 정권에 우호적 인사들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심지어 KBS 라디오의 아침 시사프로그램인 ‘최강시사’는 당시 최강욱 변호사를 진행자로 삼아 프로그램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가 불과 한 달여 만에 최 변호사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가는 바람에 명칭만 그대로 남은 케이스다. 이들 중 대다수는 지금도 남아 그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이들은 여전히 친 민주당 인사들을 중점적으로 출연시키고 윤석열 정부를 희화화시키거나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념과 가치를 공유한 사람들에게 막대한 보수가 지급되는 일자리를 주는 것은 물론 그들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향후 정계진출의 발판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방송장악이 더 위험한 이유는 방송사 노조들이 문재인 정부와 경영진에 우호적이라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때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에서는 견제세력이 전혀 없었다는 게 근본 문제였다. 친정부적 행태를 보이다가 윤석열 정부로 바뀌니 반정부적으로 돌아서서 마치 정권을 견제하는 정론처럼 ‘화려하게’ 변신했다. 그래서 이들을 공영방송이라기 보다 ‘노영방송’이라고 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공영방송이 제대로 역할하려면 정권으로부터 격리해야 한다. 그러나 방송노조가 경영과 인사, 심지어 편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 아래서는 정상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정권교체와 함께 경영권 개편을 위해 공영방송이 흔들리는 사태를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처럼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날 수 없다면, 아예 민영화해 국민의 혈세라도 아끼는 것이 좋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