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금융 취지 '50년 주담대'가 주범으로...갈팡질팡 당국, 은행은 혼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8.22 16:42

취약차주 위해 출시한 50년 주담대 당국 지목

시중은행서 대출 판매 잠정 중단 결정도



"금리인하·고정금리 확대 등 결과로 대출 꿈틀"

주담대 대환대출 플랫폼 성공 여부 미지수

대출

▲서울의 한 은행 대출 창구 앞. 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송두리 기자] 은행에 상생금융과 금리 인하를 강조하던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이 늘어나자 은행을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금융당국 요구를 따랐던 은행들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다. 금융당국의 오락가락 정책이 지속되면서 금융당국의 일관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 "50년 주담대 가계대출 주범"…은행은 "당국 따라 출시했는데"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가계대출이 늘어나자 금융당국은 10월까지 은행권 가계대출 취급실태를 종합점검하기로 했다. 사실상 가계대출 증가 원인이 은행에 있다고 보고 규제 준수 여부, 여신심사 적정성 등을 보겠다는 것이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금융당국 기조를 따라왔는데 은행에 대한 비판이 더욱 커지고 있어서다.

가장 크게 지탄을 받는 것은 은행권에서 잇따라 출시한 만기 50년의 주택담보대출이다. 주담대 만기가 50년으로 길어지면 월 상환액이 줄어들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낮아져 대출한도가 늘어난다.

은행권에서 만기 50년의 주담대를 출시한 것은 지난해 6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가계대출 정상화 방안에 50년 초장기 정책모기지를 도입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 계기가 됐다. 금융위는 금리상승기 취약차주 부실 가능성에 대비해 상환부담을 완화한다는 취지로 50년의 초장기 정책모기지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같은 해 8월 50년 만기의 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을 출시했다. 올해는 지난 1월 특례보금자리론이 출시됐고, 한화생명을 시작으로 Sh수협은행, DGB대구은행에 이어 하나은행, 농협은행, 신한은행, KB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이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5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했다.

하지만 50년 만기 주담대 등장 이후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나자 금융당국은 이 상품이 DSR 우회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농협은행에서 50년 만기 주담대 출시 후 약 한 달간 1조원이 넘는 금액이 취급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현재 신한은행을 제외하고 나이 제한 등 상품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50년 만기 주담대에 대한 연령, 소득 제한 등 기준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금융당국 엄포 이후 농협은행과 경남은행은 50년 만기 주담대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농협은행은 2조원의 한도가 초과된 만큼 이달까지 50년 주담대를 판매한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단 개인 신규 주담대는 중단하지만 집단대출·잔금대출의 50년 만기 상품은 그대로 취급한다. 경남은행은 이달 28일부터 50년 주담대 판매를 잠정 중단한다. 경남은행은 최근의 분위기에 따라 연령대별 제한, 연령대별 사용 목적 분석, 신혼가구 포함 여부 등 구체적인 틀을 만든 후 판매를 재개할 예정이다. 이밖의 은행들도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경우 이에 맞춰 상품 기준을 수정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분위기 변화에 시중은행에서는 50년 만기 주담대에 금융당국이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불만의 소리도 한다. 주담대 만기를 50년으로 늘린 것은 차주들의 이자 부담을 낮추기 위한 상생금융 취지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먼저 50년 만기 정책모기지를 도입했고, 뒤이어 시중은행들도 이를 따라 50년이라는 상징성을 살려 만기를 더욱 늘렸는데 결국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몰린 것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50년 만기 상품이 본격적으로 출시되기 전부터 가계대출이 꿈틀댔던 만큼 50년 만기 주담대 출시로 가계대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각도 일찌감치 나왔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권 주담대 잔액은 지난 3월부터 늘어나 7월까지 5개월 연속 증가했다. 주담대의 경우 중도상환 비율이 높은 만큼 나이 제한을 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는 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 "금리인하 압박·부동산 규제 완화 등이 부동산 시장 자극"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은행권의 ‘이자장사’를 비판하면서 은행들에 대출 금리 인하 압박도 지속해 왔다. 기준금리가 빠르게 오르던 시기라 대출 금리가 덩달아 오를 수밖에 없었으나, 금융당국 압박에 은행권은 대출 금리를 억눌러왔다. 금융당국은 예대금리차 공시, 고정금리 대출 확대, 대환대출 플랫폼 도입 등을 통해 대출 금리 인상을 경계해 왔고, 이같은 분위기 끝에 가계대출이 꿈틀대게 된 것이 은행의 탓으로만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각종 부동산 규제가 풀리고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면서 주담대에 수요가 몰리는 것이 주담대 증가의 근본 원인이란 분석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 원인을 은행에서만 찾으려 할 수록 연내 대환대출 플랫폼에 주담대 상품을 담기로 했던 계획도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가뜩이나 대환대출 플랫폼에 대한 은행 참여도가 높지 않은데, 금융당국의 은행 탓이 지속되면 은행들은 대출이 늘어나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며 참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은 금융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위치"라며 "금융당국 기조가 오락가락하게 되면 은행들도 금융당국을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ds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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