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EU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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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EU연구소장 |
EU가 추진하는 정의로운 전환 정책은 여러 실천 방향이 있다. 그중에서 ‘유럽 그린딜 투자 계획’(European Green Deal Investment Plan)은 10년 동안 1조 유로(약 1425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해 ‘친환경의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을 구현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EU는 ‘정의로운 전환 기금’(Just Transition Fund)을 조성해 유럽 경제의 전환에 큰 영향을 받는 지역에 우선 175억유로를 투자할 예정이며, 전환 과정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의 근로자와 주민을 지원하기 위해 2027년까지 1000억유로 이상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한다.
EU 회원국인 스웨덴은 금속, 광물, 시멘트, 화학물질을 생산하고 가공하는 탄소 집약적인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경제의 정의로운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은 이 같은 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제거하고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청정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스웨덴은 순환 경제 그리고 수소 등 원자재에 관한 연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스웨덴의 정의로운 전환 기금에서 약 94%가 경제 전략에 투입되고 있다. 이 자금의 일부를 금속 산업 인력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거나, 청소년들을 해당 지역으로 유치하면서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스마트 에너지 시스템(Smart Energy System) 개발 등에 투자하고자 한다.
한국 정부도 2020년 수립한 ‘2050 탄소중립 추진 전략’에서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전환’을 정책 방향의 하나로 제시하면서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정책에 반영했다. 이어 2021년에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생성장기본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서는 정의로운 전환을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피해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 방향’이라고 정의했다. 탄소중립기본법 제47조부터 제53조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사회안전망 마련, 정의로운 전환 특별지구 지정,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의 설립, 지역 현황조사 등 정의로운 전환을 구현하는 내용을 담았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정의로운 전환 개념에 따라 경제와 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환경과 인권, 지속가능성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이러한 경제개념의 전환은, 무역이나 국제투자 등 국제경제 무대에서도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다. 2010년에 체결된 한-EU FTA 제13장은 무역과 지속가능성에 관한 조항들을 묶었고, 이 내용들은 결국 경제의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이후 EU가 아시아 국가들과 체결한 FTA에서도 유사한 내용들이 꾸준히 등장한다. 한-EU FTA가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교본이 된 셈이다.
그러나 ‘정의로운 전환’은 개도국에게 가혹하고 선진국이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친화적이지 못한 산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개도국에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반드시 정의롭다고는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무역과 국제경제의 현실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국제경제 무대에서 정의로운 전환이 가지는 복잡한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 개념이 현재 무엇이든, 앞으로 어떻게 진화하든, 한국 경제는 올바르게 적응하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