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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관.UPI/연합뉴스 |
특히 사회주의 체제인 베트남은 이번에 중국·러시아와 같은 수준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설정했다. 외교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해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베트남에 도착해 권력 서열 1위인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과 마주 앉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쫑 서기장과 정상회담 후 "역사적 순간이었다"면서 (미국과 베트남이) 분쟁에서 정상화, 그리고 번영과 안보를 위한 힘이 될 외교관계 격상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이에 쫑 서기장 역시 양국 파트너십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고 화답했다.
눈길을 끄는 건 양국이 외교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한 점이다.
비동맹을 표방해온 베트남은 50여년 전 전쟁 상대국인 미국과는 거리를 둬왔다. 1975년 베트남 공산화 이후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가 1995년 7월 국교를 정상화했음에도 여러 측면에서 제한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 공산당 1당 지배 체제인 베트남은 그와 유사한 중국, 그리고 옛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와 동등한 수준의 외교관계를 전쟁 상대국이었던 미국과도 맺었다.
양국이 이렇게 급격히 가까워진 배경으로는 단연 중국이 꼽힌다.
미국으로선 외교관계 격상으로 중국 견제 기반을 더 확대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베트남과 힘을 합쳐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 야심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베트남과 연대함으로써 인도·태평양 전략이 한층 탄탄해질 수 있게 됐다.
베트남의 경우 대미 수출에서 중국으로 인한 반사 이익을 보는 포지션에 있다.
미국·베트남 간 무역은 그간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는 가운데 큰 증가세를 보여 왔다.
실제 양국 교역액은 작년에 1238억 6000만 달러(약 165조원)로 전년 대비 11% 늘었다. 이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최근 5년 새 애플·나이키 등 이른바 ‘탈 중국’한 미국 기업들이 베트남에 유입돼 무역 규모가 2배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이번에 양국 관계 격상으로 베트남의 대미 수출이 더 순풍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베트남이 미국의 중국 포위망에 전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다. 베트남 정권이 중국과 마찬가지로 아직은 서구식 인권과 민주주의에 경계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베트남이 미국을 상대로 경제적 실리를 챙기면서도, 비밀리에 러시아산 무기 수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베트남은 자국군 현대화를 목적으로 시베리아에 위치한 러시아·베트남 합작 석유기업을 통해 비용을 지불하고 러시아 무기를 받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는 이미 미국·일본·호주와 함께 안보협의체 쿼드(Quad) 일원으로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에 큰 힘을 실어 왔다. G20 정상회의 기간에는 인도-중동-유럽을 잇는 철도·항구 등 인프라를 연결하는 미국 주도 사업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대한 큰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9일 체결된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ndia-Middle East-Europe Economic Corridor·IMEC)’ 설립 양해각서(MOU)는 중국 일대일로에 대한 미국의 ‘맞불’로 평가된다.
이 MOU에는 미국을 중심축으로 인도가 적극 뒷받침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유럽연합(EU) 등이 참여했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가세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성과에 백악관은 미국과 파트너국들이 기존 해상·육상 운송로를 보완하는 국가 간 선박-철도 환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송전·고속 데이터 전송을 위한 케이블과 청정 수소 수출을 위한 파이프라인을 설치한다는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구상이 아시아·유럽 대륙의 항구들은 연결하는 "진짜 빅딜"이라며 "더 안정되고 번영한 중동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IMEC에 "미래 세대가 큰 꿈을 꿀 씨앗을 뿌리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경제회랑 구상이 본격화하면 중동 맹주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 접근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중국이 ‘숙적’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재해 외교관계를 재개토록 한 이후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해빙으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미·중 중동 외교전이 가열 양상인 셈이다.
외신들은 미국이 민주주의 진영에 속한 인도, 유럽, 이스라엘 등과 함께 중동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 중국 일대일로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경제회랑 구상에 담겼다고 평가했다.
중국 역시 이 구상이 일대일로에 타격이 될 것으로 보고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일대일로는 중국이 2012년 말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2013년부터 추진해온 중국-중앙아시아-유럽 간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이다. 중국의 ‘대국굴기’를 현실화하려는 대외 확장 전략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미 일대일로의 균열은 시작됐다.
이탈리아는 지난 2019년 3월 주세페 콘테 총리 주도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참여를 공식 선언했지만, 최근 탈퇴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뉴델리 G20 정상회의에서 리창 중국 총리와 회담하면서 일대일로 프로젝트 중단 의사를 전달했다.
중국이 그간 영향력 확대에 박차를 가해온 만큼, 반격 준비도 예상된다.
시 주석은 그동안 서방 중심의 주요 7개국(G7)에 맞서 G20 무대를 최대한 활용해왔다. 또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이란 수교 중재를 시작으로 지난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 회담을 주도하면서 대미 압박의 강도를 높여왔다.
그러나 여러 가지 추론을 낳게 했던 시진핑 국가 주석의 G20 불참 속에 일격을 당한 중국의 대응 카드가 뚜렷하진 않은 모양새다.
특히 중국 주도로 브릭스에 추가로 가입한 6개국 중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미국 주도의 경제회랑 구상에 참여해 중국 입장이 난처해졌다.
중국은 일단 10월 베이징에서 열릴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 포럼을 대응의 계기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hg3to8@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