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수혜자는 누굴까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10.30 09:54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이상호교수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10월 23일 이스라엘은 모처 군사기지에서 200여 명의 외신기자들을 대상으로 10월 7일 하마스(Hamas) 기습 공격 당시 행해졌던 참수와 유아 살해, 강간, 시신 훼손 등 잔혹 행위가 저질러진 정황이 담긴 43분 분량의 영상을 공개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CCTV, 하마스 테러리스트의 핸드폰, 액션카메라 등 다양한 출처에서 수집한 영상을 편집한 내용으로 10월 7일의 기습공격 당시의 참상이 생생히 담겼다.

하마스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민간인을 대상으로 잔인하게 난동을 부린 경우는 드물다. 이는 적에 공포와 함께 극도의 적개심을 자극하기 위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인간 도살 행위다. 하마스는 이런 도발이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보복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이런 잔혹한 테러와 범죄를 저질렀을까.

2006년 팔레스타인 가자(Gaza) 자치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도 세력인 파타당을 몰아내고 권력을 독점한 하마스는 이스라엘 파멸을 목표로 공격을 계속해 왔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민간인을 대상으로 자살폭탄 테러와 로켓 공격 등 노골적인 도발을 했다.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가자 지구 민간인이 피해를 보면 하마스는 오히려 이를 자신의 존재 가치와 권력이 강화하는데 이용했다. 하마스의 행동은 ‘자해공갈단’과 같다. 자해의 정도가 심하면 심할수록 오히려 공갈의 강도가 강해지는 것 처럼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확대되고 민간인의 희생이 많아질수록 하마스의 권력이 강해지는 것이다. 하마스 존재의 정당성과 정체성은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와 자해행위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마스는 이번 공격을 위해 2년 동안 준비했고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란 등으로부터 각종 무기와 자금지원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하마스가 보유한 무기 중에는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해 러시아 기갑부대 섬멸에 큰 공을 세운 영국제 N-LAW 대전차 미사일 등 상식적인 경로로 획득하기 어려운 장비도 있다. 이번 공격에 하마스 이외 다른 배후가 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의문시되는 부분은 하마스가 왜 굳이 공개적으로 상식을 초월한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냐는 것이다. 이런 하마스의 도발은 이스라엘은 물론 전 세계 여러 나라의 공분을 자초했다. 하마스 지도자들은 여느 정치집단 처럼 권력 유지를 위해 합리적이고 지능적이며 냉철한 판단을 하고 자신의 안전을 중요시하는 집단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왜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자해행위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예상대로 이스라엘은 하마스 완전 제거를 목표로 각종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하마스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우선 하마스는 중동 정세에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자신을 고립시킬 수 있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국교 정상화를 방해하고, 마침 네타냐후 정부의 실정으로 해이해진 이스라엘의 방어 태세 허점을 이용해 공격을 결심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여기에다 일부러 이스라엘에 지상전을 강요하여 최대한 많은 희생과 전력 낭비를 유도하고 아랍 국가들의 동정을 유발하여 범이슬람권 성전 참여를 독려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목표 달성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하마스의 피해가 엄청날 것이기 때문에 하마스보다는 제3의 세력이 더 큰 혜택을 얻게 될 것이며 바로 이 세력이 이번 사태의 배후일 가능성이 짙다.

당장 의심이 가는 세력은 이란이다. 이란은 숙적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가 미국의 안전보장을 전제로 이스라엘과 평화를 맺으면 중동과 이슬람 권역에서 영향력이 축소되고 고립될 것이 확실하다. 이란은 극단주의 이슬람 수출, 이슬람 신정정치 영구화 및 확산, 사우디 등 부패한 이슬람 왕정국가 응징, 중동 지역에서 미국 등 외세 축출과 지역 패권 확보 등 다양한 전략 목표 달성을 원한다. 하마스는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등 이슬람권 강국과 경쟁은 물론 서방과의 대결에서 이란 방식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구사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다.

중동의 혼란으로 이익으로 보는 또 다른 집단은 러시아, 중국, 북한 등 신흥 권위주의 세력이다. 지정학적 화약고에 위치한 이들 국가는 긴장과 위기 조성이 정치권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푸틴 장기 집권 후 안전보장을 위한 대안이고, 중국은 대만 및 주변국 문제를 이용해 공산당에 장기 집권을 공고히하며,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 호전적 대남 행보를 통해 김정은과 백두혈통의 권력 영속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식, 중동 지역에서 평화 정착, 인도·태평양 지역 긴장 완화 및 미래 분쟁 예방을 목표로 긴장 완화를 원하고 있지만, 권위주의 세력은 혼란과 긴장을 통한 권력 유지와 확장을 원한다. 이번 하마스의 ‘자해공갈단’식 공격은 이런 최근의 국제정치와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 범 자유민주주의 세력 및 ‘권위주의 축(axis of authoritarianism)’ 사이에서 주도권 확보를 위한 본격적인 ‘대리전’ 성격의 대결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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