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RE100 기업 도와주겠다며 헛다리 짚은 정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11.09 08:23
신동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이사

신동한

▲신동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이사

RE100은 민간단체인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와 ‘더 클라이미트 그룹’ 주도로 2014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기업들의 자발적 탄소감축 운동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로 사용하겠다는 약속이다. 구글,애플과 같은 IT업체는 물론 GM등 제조업체, 코카콜라와 레고 같은 소비재 업체까지 현재 38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이 참여했으며 이들 중 30개 이상의 기업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고 있다. 참여 기업들의 평균 RE100 달성 목표 연도는 2030년이며 2050년을 넘지 않아야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데 민간의 기후변화 대응 활동이 어떻게 한국 경제에서 키워드가 됐을까? RE100 참여 기업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품이나 소재 업체에게도 RE100을 요구한다. 이들에게 부품을 납품하는 기업은 생산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용했다는 증빙을 첨부해야 한다. 수출 주도형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 많은 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 이미 오래이다. 스웨덴의 볼보나 독일의 BMW에 납품하는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이를 충족하지 못해 최종 계약 단계에서 무산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중국에 현지 공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의 경우 재생에너지 전기 조달이 가능하다. 하지만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내건 삼성전자도 국내 공장을 제대로 가동하려면 국내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 전기가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예산을 사정 없이 잘라버린 정부지만 국내 기업의 생산시설 이탈은 막아야 할 상황이다. 그래서 나온 대책 중 하나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의 ‘국가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거래’와 ‘REC 상한제’ 도입을 위한 행정지침 개정이다. 산업부는 지난 10월 20일 RE100 달성이 시급한 국내 기업들의 REC 조달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 및 연료 혼합의무화제도 관리·운영지침’ 개정을 공고했다. 그동안 시장에 풀지 않았던 국가 대상으로 발급되는 REC를 거래하기 위한 준비다. 그런데 진단을 잘못해 오답을 낸 안타까운 사례가 됐다.

2012년 신재생에너지로 발전한 전력에 대해 REC를 발급하기 시작한 이래 REC 가격은 크게 변동해왔다. 2013년 1월 15만7806원으로 시작한 REC 가격은 2018년 연평균 9만5781원으로 떨어졌고 2021년에는 3만6523원으로 최저치를 찍었다. 이후 지난해 5만6478원으로 상승 전환해 올해들어 이달 2일 현재 REC 현물가격은 RPS시장 7만6600원, K-RE100시장 7만3324원이다.

본래 REC는 한국전력에서 매입하는 전력가격(SMP)으로는 생산비 보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공급의무를 가진 대형 발전사에 REC를 판매해 수지를 맞추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그런데 2017년부터 의무발전사의 공급의무량보다 REC 발급량이 많아져 가격이 내려간 것이다. 2021년 최저 2만원 대까지 떨어져 수익 악화로 고전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이 대책 마련을 요구하자 산업부는 기준가격의무매입제(FIT)에 비해 시장의 자율 조정에 따르고자 RPS를 시행하는 것이므로 개입할 수 없다며 딱 잘라 거부했다.

그러나 지난해 들어 상황이 변했다. 여전히 공급의무량에 비해 REC 발급량이 많은데도 REC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일한 구매자 그룹이던 공급의무발전사 외에도 국내 RE100 참여기업과 글로벌 기업에 납품하는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전기 사용을 증명하기 위해 REC를 구매하기 시작하면서다. 그리고 그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되자 산업부가 내놓은 대책이라는 게 국가REC를 판매해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상한제까지 도입해 가격을 묶겠다니,그동안 시장경제를 내세우던 산업부의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의문이다.

국내 RE100 관련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전기 사용을 증빙하는 방법은 재생에너지발전사업자에게서 REC를 매입하거나, 한전에 프리미엄 가격을 지불하고 재생에너지 전력을 구매하는 방법 등 2가지다. 후자의 경우 한전은 재생에너지 전기를 더 비싼 값으로 팔 수 있으니 재생에너지 지원 비용을 일부 회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2022년 기준으로 국내 RE100 기업들의 합계 사용 전력량은 5만6338GWh로 서울시의 연간 총 전력사용량(4만8789GWh)보다 많다. 삼성전자만 해도 연 2만1731GWh를 사용하여 부산시(2만1493GWh)보다 많이 쓴다. 같은 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모두 4만7266GWh에 불과했다. RE100 참여 기업들은 2030년까지 사용 전력의 60%, 2040년까지 90%, 2050년에는 전량 재생에너지 전기만을 사용해야 한다.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전력 수요는 점점 늘어나는데 국내에서 공급하는 양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지난해부터 REC 가격이 오르는 배경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당연히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늘리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여전히 억제 일변도다. 이번 조치도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의 손익분기점을 어렵게 해 민간 투자 의욕을 꺾고 있다. 이번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지난해 신규 태양광발전 설비 감소로 그 효과를 입증했다. 정부가 진정으로 RE100 기업을 돕고 싶다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 쥐어짜기가 아니라 획기적인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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