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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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비상경제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연초에 이어 은행권의 과도한 이익추구를 재차 질타했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갑질을 해서 돈잔치를 벌이는데, 이는 은행이 과점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자꾸 경쟁이 되게 만들어야지, 은행의 독과점 행태를 정부가 그냥 방치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했다. 10월말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께서 죽도록 일해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을 ‘은행의 종노릇’에 비유한 것의 연장선상이다.
은행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질책은 문제의 핵심을 벗어났으며 관치금융을 부추겼다. 은행의 과점이익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가 은행 대형화를 추진한 결과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은행은 정부가 주도하는 게임의 룰에 따라 열일 했을 뿐인데 이제와 초과이익을 문제 삼으니 혼란스러울 것이다. 은행시장은 비대칭정보가 넘치는 불완전시장으로 지나친 경쟁은 금융안정에 문제를 유발하고 자원배분의 양극화를 초래하여 소상공인들의 ‘종노릇’ 피해를 악화시킬 수 있다. 한편 금융은 규제산업인데 은행 행태를 나무라면서 금융당국의 방치를 나무란 것은 고작 팔이 안으로 굽은 정도다.
모두가 힘든 요즘 은행의 역대급 이자이익과 보너스 잔치 소식은 씁쓸하다. 그러나 이들은 개별 기업의 경영문제에 불과하며, 저비용조달과 담보대출로 짜여진 소위 ‘천수답 경영’에 안주해온 은행의 취약한 중개역할이 문제다. 만약 은행이 그동안 중개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면 초과이익이나 보너스 잔치는 모두 장려할 일이 아닐까.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보너스 잔치 질책 보다 은행의 중개역할 부재 극복이 절실한 과제임은 분명해 보이지 않는가.
이런 관점에서 세 가지 대안을 살펴본다. 첫째, 최근 금융권 등에서 논의되는 상생금융은 하책에 불과하다. 본래 상생금융은 은행의 당연한 책무다. 고객이 살지 못하면 은행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상생금융은 대증적이고 강제성을 지녀 관치금융에 가깝다. 그래서 이익 환원을 핑계로 정작 중요한 중개역할 활성화에는 눈 감을까 우려된다. 이자부담 경감이나 대환대출 확대 등을 압박하지만, 법과 제도에 의하지 않는 방식이 은행과 고객간 상생관계를 오히려 해치고 한국금융의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 효과를 끼칠까 우려된다. 출연금이나 기부금을 확대하여 서민금융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 역시 서민의 곤경 해결 보다 은행의 배 불리기로 기울어 상생금융 본래의 취지를 벗어날 수 있다.
둘째, 상생금융과 함께 논의되는 횡재세(windfall tax)는 이자이익의 일부 환수라는 점에서 공통되나, 국회의 결정으로 관치 비난을 벗을 수 있어 중책으로 평가한다. 여기서 은행의 이자이익 일부를 횡재로 보는 이유는 은행이, 별다른 역할도 없이, 시장금리 상승에 편승하여 기존대출의 대출금리를 조달금리보다 빠르게 인상함으로써 발생했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국내은행 대출의 60~70%가 금리연동형인 현실에서 은행은 금리상승시 과거 조달한 기존대출의 조달금리가 아직 변하지 않았음에도 대출금리를 시장금리 또는 수신금리에 맞춰 상향조정함으로써 횡재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횡재세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시장왜곡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왜곡의 교정효과가 기대된다. 횡재세원으로 차주고객의 횡재손(이자부담 증가)을 메우면, 소비와 투자 위축 및 신용위험 확대를 예방할 수도 있다. 다만 횡재세의 은행 중개역할 활성화 효과가 제한적임은 약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셋째로 상책은 천수답 경영으로 대변되는 은행의 기득권을 줄여 중개역할 활성화를 유도하는 안이다. 예로 지난 6월 7일 본지 칼럼에서 필자가 제안한 ‘주담대정책 이원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저축은행과 신협 등 비은행의 주담대 점유율 상승과 은행의 점유율 하락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은행 수익의 단기적 감소가 예상되나 인적·물적 자원을 절감하여 고객 니즈 맞춤형 비이자이익 업무 개발에 사용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거래형 금융이나 초과형 금융을 개발하거나 자영업자에 대한 컨설팅 및 지원 확대를 고려할 수도 있다. 한편 은행 자본규제에 대마 프리미엄을 추가하거나 경기대응완충자본(CCyB)을 시행하는 것도 건전성 요건 강화를 통해 천수답 경영 유인 축소에 기여할 것이다.
한국금융의 해묵은 과제인 은행의 천수답 경영 해소에 금융당국이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올바른 금융개혁안이 제시되어 국내은행의 역할 강화를 이끌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