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 정치경제부 기자
여의도 일각에서는 ‘정치권 이슈몰이에 성공했으니 혁신위는 성공한 셈’이라고 말을 한다. 이 말은 ‘국민의힘 혁신위 활동이 민주당의 이슈를 꼼짝없이 덮었다’는 뜻이다. 민주당에 불리하게 작용했던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와 당내 계파 갈등은 물론 총선을 앞두고 발표한 대의원제·공천룰 개정 등 모든 정치 이슈가 생각보다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민주당의 이슈만 빨아들인 게 아니다. 혁신위는 국민의힘 당 지도부를 두고 제기됐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책임’ 비판도 집어 삼켰다.
혁신위 출범 당시를 떠올려보자. 이번 혁신위는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이 경각심을 가지고 출범시킨 기구다. 당시 국민의힘이 17%포인트 이상 표차로 민주당에 밀리면서 김기현 당 대표 체제에 대한 비판과 불신까지 이어졌다. 당 대표 직을 유지했지만 총선 대비책이 시급했던 김기현 대표는 혁신위를 출범시키며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했다.
김기현 대표는 혁신위를 내세워 당 대표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영입 인재로 거론돼 오던 인 위원장을 수장으로 내세운 혁신위는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이슈 뿐 아니라 국민의힘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 이슈도 집어 삼켰다. 반대로 말하자면 혁신위 덕분에 김기현 대표의 보궐선거 참패와 그 책임이 희석된 셈이다.
하지만 당 지도부와 혁신위 사이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혁신위가 가장 중점 삼아 추진한 안건은 ‘특권 포기’다. 혁신위가 42일 동안 당 지도부에 제안한 6가지 안건 가운데 ‘국회의원 특권 포기’, ‘전략공천 배제’ ‘중진 험지 출마 혹은 불출마’ 등이 이에 해당한다. 혁신위와 당 지도부 간 입장이 어긋나기 시작한 지점도 여기서부터다. ‘중진 험지 출마 혹은 불출마’를 담은 ‘주류 희생’ 안건에 대해서는 혁신위와 당 지도부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이제 당 지도부의 결단만이 남았다. 김기현 지도부가 혁신위의 주요 안건인 ‘주류 희생’을 받아들인다면 당 지도부와 혁신위 모두에게 ‘과감하면서도 진정한 혁신’이라는 평가가 따를 수 있다. 반대로 혁신위의 1호 안건인 ‘대사면’을 제외하고 다른 혁신안이 외면받는다면 ‘김기현 대표의 보궐선거 책임 희석제’으로 평가가 그칠 가능성이 높다.
김기현 대표가 혁신위의 쓴 약을 집어 삼킨 ‘쇄신의 당’을 만들 지, 혁신위를 이슈몰이로 활용한 뒤 혁신위를 토사구팽한 지도부로 남을 지는 그의 리더십에 달렸다. 전자를 택한다면 22대 총선 결과와 무관하게 아름다운 변화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후자를 택한다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와 더불어 22대 총선 결과에 따르는 후폭풍도 각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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