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로버트 솔로'식 기술혁신이 답이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12.27 08:13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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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얼마 전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로버트 솔로 (Robert Solow) 교수가 별세했다. 198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그의 주 전공분야는 경제성장론이었으며 방법론으로는 동학 모형으로서 필자의 연구에 여러모로 영향을 끼쳤다. 몇 년 전에는 그의 경제성장 모형을 확대해 ‘탄소중립은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양립하는가’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 바도 있다. 필자는 이 논문을 통해 2050년 무렵 인구절벽·재정절벽·연금절벽의 ‘트리플 위기’에서 우리나라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산업성장과 기술혁신을 막는 단기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 위주의 정책이 아니라 기술개발과 자본축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로버트 솔로 교수가 지속가능성 이슈에 동참했던 1970년대는 오늘날과 유사하게 환경이 이슈였지만 그 내용은 사뭇 달랐다. 지구온난화를 우려하는 현재와는 달리 당시는 빙하기의 도래를 우려하고 있었으며,(독자 중 그 당시 한강이 얼었던 것을 기억할 세대도 있을 것이다), 로마클럽은 인구증가와 자원고갈로 인류의 생존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무겁게 경고하던 때였다.(아이러니하게 지금은 인구감소를 우려하고 자원의 가채 년수도 여전하다)

로마클럽의 경고 이후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정의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UN은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수자원, 대기자원, 토양자원이 지구 상에 애초에 형성되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도록 모든 세대가 이들 자원을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화석연료는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땅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심층 생태중심의 사고를 근거로 당시 선진국의 환경주의자들은 중진국의 인구증가 문제에 심각하게 개입하기도 하였다.

로버트 솔로 교수는 이와 같은 지속가능성 정의는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대신 그는 화석연료를 최적의 소비경로를 따라 사용하되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개발과 산업성장으로 연결해 미래 세대가 경제적, 생태적으로 박탈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즉, 기술진보를 통한 새로운 성장자본의 축적으로 지속가능한 환경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동시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세대간 형평성, 특히 취약세대에 대한 배려가 더욱 필요하다는 존 롤스의 정의론적 관점과도 부합한다는 연구들도 상당수 있다.

21세기인 오늘날의 탄소중립 논쟁은 필자가 볼 때 1970년대 로마클럽과 1980년대 지속가능성 논쟁의 데자뷔다. 자원 이용률과 인구증가율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오늘날의 넷제로와 유사한 개념이다.

로버트 솔로 교수의 기술혁신 중심의 환경-경제성장 모형에 따르면 넷제로라는 온실가스 감축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탄소중립의 기술혁신을 통해 산업역량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탄소중립은 1~2년 추진하고 그만둘 정책이 아니라 수십년 아니 한 세기에 걸쳐 추진해야 할 방향이라면 우리 자체적으로 그 산업적 역량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수입산으로 태양광과 풍력을 다 깔고서 그것으로 탄소중립 달성했다고 하는 주장은 오히려 미래 세대의 경제권을 박탈하는 존 롤스의 정의론에도 위배된다.

넷제로를 주장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IRA (인플레이션 감축법) 또는 그 전신인 Build Back Better(경제인프라 패키지), 탄소국경조정제, 핵심원자재법 등은 온실가스 감축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저탄소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 산업자본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럼 우리나라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가? 정작 산업자본의 육성을 통한 강건한 경제성장 도모보다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관련 산업도 두들겨 패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국내 밸류체인을 강화할 수 있는 인센티브 정책과 과학기술의 부흥을 위한 로버트 솔로 방식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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