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회장 직제 폐지'...금융지주 차기 CEO 구도 '혼전'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12.27 15:48

하나금융, 부회장직 폐지...부문임원 도입

KB금융, 28일 인사에서 부회장 폐지 무게



차기 CEO 육성 효과적 VS 신속 의사결정 저해

금감원 "외부에도 동등한 기회 부여"

금융사들 '딜레마'

금융지주

▲신한지주·KB금융지주·하나금융지주·우리금융지주. (사진=에너지경제신문DB)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사 부회장 제도의 부작용을 지적하면서 4대 금융지주가 사실상 부회장직을 모두 폐지했다. 부회장직은 금융지주사의 차기 회장 후보군으로 불리며 그룹의 핵심 사업부문에서 경영능력을 검증받는 순기능이 있었는데, 금융지주사들이 부회장직을 없애면서 향후 회장직을 선임할 때도 일부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은 내부 후보뿐만 아니라 외부 후보에게도 공정한 평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회사 입장에서는 회장직에 오를 수 있는 인재 풀이 한정적인데다 외부 후보에게도 회사 내부 정보를 동일하게 제공하는 것은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 4대 금융지주, 부회장직 모두 없앤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지주는 부회장 직제를 폐지하고, 부문 임원 체제를 도입한다. 기존에는 박성호 전 부회장이 디지털과 신성장 기회 발굴을, 이은형 부회장이 글로벌과 ESG를, 강성묵 부회장이 그룹개인금융부문과 자산관리, 기업투자금융(CIB) 등을 담당했다. 그러나 박성호 부회장은 임기 만료로 자리에서 물러나고, 박 부회장이 담당했던 디지털, 신성장 기회 발굴은 각 부문장이 담당한다. 이은형 부회장과 강성묵 부회장은 부문 임원으로 기존에 맡은 업무를 그대로 수행한다.

하나금융은 이번 조직개편에서 손님 중심의 그룹 내 협업과 본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손님가치부문을 신설하고 산하에 개인금융, 자산관리, CIB를 본부로 편입했다. 이에 따라 강성묵 부회장은 부문 임원으로 손님가치부문과 산하에 있는 개인금융, 자산관리 등을 담당한다.

KB금융지주는 오는 28일 그룹 임원 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할 예정이다. 이번 조직개편에서 KB금융도 사실상 부회장직을 폐지할 것이라는데 무게가 실린다. KB금융은 기존 허인 부회장, 양종희 부회장, 이동철 부회장 체제를 유지했는데, 양종희 부회장이 지난달 KB금융 회장으로 선임된 후 허인 부회장과 이동철 부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우리금융지주는 올해 3월 임종룡 회장 취임 직전 총괄사장제와 수석부사장제를 폐지하고, 그룹의 경영승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경영승계 프로그램은 절차적 투명성, 전문성을 높이고 금융지주 회장의 독단적인 판단을 배제하기 위해 본부장급 인사들을 행장 후보군으로 키우는 것이 경영승계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다른 지주사와 달리 신한금융지주는 부회장직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CEO 후보군을 부회장직에만 한정하지 않고, 그룹의 주요 경영진은 모두 회장의 후보군이 될 수 있도록 했다.


◇ 2025년 3월 현 회장 임기 만료...차기 회장 선임 혼란 불가피


이복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금융지주사들이 부회장직을 폐지한 것은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과 무관치 않다. 이복현 원장은 최근 금융지주사의 부회장 제도에 대해 "셀프 연임보다는 훨씬 진일보한 제도이지만, 내부에서 폐쇄적으로 운영돼 시대정신에 필요한 신임 발탁이나 외부 경쟁자 물색을 차단한다는 부작용도 있다"고 밝혔다.

특히 내부 후보에 대해서는 부회장직을 부여하는 등 역량 개발을 지원하는 만큼 외부 후보자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금감원은 강조했다. 내부 후보가 외부 후보자보다 차기 CEO로 발탁되는 과정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 금융권 일각에서는 부회장직이 유연하고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는데 부정적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부회장직을 폐지하면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해져 각 분야의 전문성을 보유한 임원들이 그룹의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하는데 효율적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지주사들이 부회장직을 폐지함에 따라 향후 차기 CEO를 발탁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NH농협금융지주를 포함해 5대 금융지주사로 넓혀도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CEO는 없다. 그러나 부회장직은 차기 CEO 후보군으로 경영 능력을 검증받는 무대로 활용됐던 만큼 2025년 3월 차기 CEO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이사회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경우 2025년 3월 임기가 만료돼 하나금융은 내년 말부터 차기 회장 후보군을 추리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회장 후보군에 오를 수 있는 인물들이 제한적인데다 외부 인사에 회사의 내부 정보를 어디까지 제공할지도 논란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 회장 후보군에 오를 정도의 외부 인사라면 자신이 현재 맡고 있는 업무만으로 바쁘기 때문에 다른 회사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금융지주사라고 해도 사기업이기 때문에 내부인이 아닌 외부 인물에게 내부 정보를 다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로 넓혀도 4대 금융지주 회장 후보군에 오를 수 있는 인물은 극히 제한적"이라며 "단순히 후보군에 올랐다고 해서 회사의 중요한 정보를 어디까지 제공해야 할지, 그에 따른 부작용은 없는지 등은 모두 가늠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ys106@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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