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인재 육성 최대 걸림돌은 ‘의대 열풍’···“구조 바꿔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2.15 15:09

SKY 계약학과 학생 무더기 등록 포기···반도체·미래차 등 ‘찬밥’

정원확대 등 이슈에도 ‘의대 쏠림’ 심화

대기업 연계계약학과 정시 1차 미등록 현황. 자료=종로학원

대기업 연계계약학과 정시 1차 미등록 현황. 자료=종로학원

▲대기업 연계계약학과 정시 1차 미등록 현황. 자료=종로학원

글로벌 최고의 인재를 육성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재계 주요 기업들의 전략이 '의대 열풍'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우수 인재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 심화되며 취업이 보장된 계약학과에서도 무더기 등록 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구조 개혁 없이는 장기적으로 기업들은 물론 국가 경쟁력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올해 대입 정시모집에서 주요 대학 계약학과에 합격하고도 등록을 포기한 수험생이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다. 계약학과는 대학과 기업이 협업해 특정 분야를 전공으로 개설한 게 특징이다.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된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재계 역시 우수 인재를 일찍부터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계약학과 개설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왔다.



삼성전자 계약학과인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정시 최초합격자 중 미등록 비율은 92.0%에 달했다. 정원 25명 중 23명이 미등록한 셈이다. 지난해(70.0%)보다 22.0%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삼성전자의 또 다른 계약학과인 고려대 차세대통신학과는 최초 합격자 10명 중 7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미등록률은 70%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16.7%)보다 4배 이상 오른 수준이다.




현대자동차 연계 계약학과인 고려대 스마트모빌리티학부는 최초합격자 20명 중 13명(65.0%)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36.4%)보다 등록 포기율이 크게 뛰었다. SK하이닉스 연계 계약학과인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10명 중 5명(50.0%)이 등록을 포기했다. 지난해(18.2%) 등록 포기 비율보다 3배가량 높아진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자연계열 상위권 학과인 계약학과에서 대규모 이탈자가 발생한 것이 '의대 쏠림'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연세대·고려대 계약학과는 지방대 의약학계열과 합격선이 비슷하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서울대 자연계열에서도 정시 최초 합격자 769명 중 76명(9.9%)이 등록을 포기했다는 사실이 이 같은 의견을 뒷받침한다. 이는 지난해 등록포기자(64명·8.9%)와 비교해 18.8% 증가한 수치다.


재계는 미래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인공지능(AI), 미래차, 수소 등 전에 없던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최우수 인재를 데려오는 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오는 26일까지 TV와 가전, 모바일 사업 등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 경력사원을 채용한다. 모집 직무만 90여개에 달한다. 그간 사업부별로 필요에 따라 수시로 인재를 영입하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거의 모든 직군에서 동시에 경력 채용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미래는 기술 인재의 확보와 육성에 달려 있다"며 우수 인력의 중요성에 대해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송창현 현대차 사장은 지난달 8일(현지시간) 'CES 2024' 현대차 미디어 콘퍼런스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회사의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발전 방향성은 명확하다"며 “현재 관건은 테크 관련 좋은 인재를 많이 영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을 더욱 속도감 있게 추진해 잘못된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대 정원을 늘리고 의사들이 누리는 특권을 일부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과학기술 발전, 미래 산업 역량 강화 등에 힘써야 할 우리나라 최고 인재들이 모두 의사가 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대학입시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여명 늘리기로 한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지역·필수의료 위기의 중요 원인으로 의사 수 부족을 지목하고 의대 증원을 추진해왔다. 지난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임상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000명당 2.6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3.7명이다. 오스트리아(5.4명), 노르웨이(5.2명), 독일(4.5명) 등은 우리나라의 2배 안팎 수준이다.



여헌우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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