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도림 대심도 빗물터널공사 입찰 잇따라 무산
실질 공사비 급등에도 배정된 예산은 안 늘어나
거듭되는 유찰로 기한 내 준공 사실상 어려워져
“입찰제도 수정하고 빠른 수의계약 전환 이뤄져야”
서울시가 도심 폭우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추진 중인 대심도 빗물터널 공사가 건설원가 급등에 따른 입찰 실패로 지연되고 있다. 침체된 건설경기 시장의 최대 걸림돌인 공사비 폭등 문제가 공공공사에서도 예외 없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입찰제도로 자칫 시민들의 큰 피해가 우려된다.
◇ 침수 막는 대심도터널 공사 계속 지연
조달청은 지난 6일 시 도시기반시설본부가 발주한 '도림천 일대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건설공사' 세 번째 입찰공고를 냈다. 이미 두 번이나 입찰 공고했으나 어느 건설사도 참여하지 않았다. 동시에 추진 중인 강남, 광화문 대심도 터널 공사도 최근 입찰 공고를 냈지만 응찰자가 없어 이달 중 재공고가 나갈 예정이다.
앞서 시는 대규모 침수를 방지하기 위해 권역 내 침수취약지역으로 꼽히는 강남역과 광화문, 도림천 일대 3개소에 대한 대심도 터널공사를 실시하기로 했었다. 2020년 준공한 양천구 신월동 빗물저류배수시설을 통해 침수피해 방지 효과를 톡톡히 봤었다.
문제는 최근 몇년새 50% 이상 급등한 공사비다. 시가 책정한 터널공사비가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건설사들이 선뜻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우건설 같은 경우 관심이 있어 입찰을 검토 중이나 내부 심의부서의 승인을 받지 못해 언제쯤 참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며 “관심을 보이는 코오롱글로벌 등의 사정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이처럼 공공 공사비가 현실과 동떨어지게 된 이유는 '곳간 열쇠'를 손에 쥔 기획재정부의 보수적 예산 책정 때문이다. 공공기관들은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토목사업를 하려면 기재부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재부는 최근 급등한 공사비 현실을 외면한 채 '삭감'의 칼날만 휘두르고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그나마 이번 3개 대심도터널 공사 입찰의 경우 시의 요청으로 이전보다 평균 약 15.4% 정도 증액된 상태다. 도림천 공사는 3569억8900만원에서 4262억800만원(19.3%↑), 강남역 3934억500만원에서 4494억6200만원(14.2%↑), 광화문 2432억5200만원에서 2748억3200만원(12.9%↑) 올랐다.
◇잦은 유찰 방지 대책 필요
건설업계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부동산 침체기인 현 시점에서 사회간접자본(SOC) 공공 공사는 실적을 채우는 주요 수단임에도 살인적으로 오른 공사비 때문에 오히려 적자를 볼 수 있어 입찰을 꺼린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관심을 두고 있던 사업들이 내부심의에서 예산책정을 하다 보면 사업성이 안 맞는 경우가 많다"며 “조금씩 공사비를 증액했다고 해도 사업 실행률이 100%라 쉽게 덤벼들지 못한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쟁입찰은 고사하고 1개 건설사 참여마저 버거워 보인다. 공사비를 조금씩 증액한다고 해도 경쟁입찰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여 1개 건설사만 참여해 향후 수의계약을 노려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또 두 번 정도는 유찰을 겪어야 한다. 이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대부분의 토목사업이 기한 내 준공을 마칠 수가 없게된다.
이치주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입찰 준비과정에서 소요되는 과도한 비용과 낮은 설계보상비, 단일응찰 시 수의계약 전환부족이 있어 유찰이 반복된다"며 “입찰서류 작성 부담을 덜기 위해 발주자의 부실한 기본계획단계보다는 이후 단계인 계획설계부터 공모를 진행하고, 사업규모 따라 설계보상비 산정 요율을 차등으로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재공고 후 단일응찰일 경우 수의계약으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유찰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