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1400원까지 올라···국내 기업 수익성 악화 전망
중동 전쟁 확산의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연일 고공행진을 보이며 국내 산업계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고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곳들도 있어 기업들의 부담감이 커질 전망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전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00원선까지 올랐다가 1394원대에서 마감했다. 환율이 장중 1400원대로 오른 것은 2022년 11월 7일(1413.50원) 이후 약 17개월 만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더욱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위험회피 심리가 강해지며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소매 판매 등 미국의 물가 지표가 예상치를 넘으면서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가 축소된 점도 달러 강세 요인으로 꼽힌다.
이러한 고환율 흐름으로 한국 산업계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국내 산업 구조 특성 상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데 환율이 높아질수록 원자재 수입 비용 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환율 추세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원재료 수입 비중이 큰 식품 업계의 상황이 악화될 전망이다.
대부분 식품 기업들은 3~6개월 정도의 원재료 재고를 확보해놓기 때문에 고환율 흐름이 이 기간을 넘어간다면 단가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지난해 기준 원달러 환율이 10% 오를 경우 세후 이익이 181억5300만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최근 중국산 제품의 저가공세, 전기료 인상 등으로 불황을 보내고 있는 철강업계의 고심도 깊어졌다.
철강업계는 수출 위주의 수익구조로 인해 일정 이상의 환차익이 기대되고 있지만 제품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철광석 등 원재료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지금 같은 환율 오름세가 이어진다면 물가 상승으로 인한 경기 위축으로 철강업황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전자 등 미국에 현지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기업의 부담도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같은 설비를 투자하더라도 더 많은 금액의 비용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조지아주에 약 7조원을 투입해 전기차 신공장을 짓고 있다. 이 공장은 자국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제공하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 현대차가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곳이다.
특히 현대차는 기존 2025년 완공 목표를 올해 10월로 앞당기는 등 조지아 공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최근 미국 현지 배터리 생산공장 착공에 들어갔다. LG엔솔은 미국 애리조나주에 7조2000억원을 투자해 단일 기업 최대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다.
SK온도 미국 공장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SK온은 미국 포드와 배터리 합작법인을 통해 114억달러 규모의 미국 켄터키·테네시 공장을 짓고 있다. 양사는 켄터키주와 테네시주에 배터리 공장 3개를 건설하고, 약 120GWh의 생산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또 SK온은 현대차그룹과 조지아주에 35GWh급 배터리 합작 공장을 짓는 등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는다. 삼성전자는 최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의 투자를 확대해 4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고, 후공정 패키징 시설과 첨단 연구개발(R&D) 시설도 신축할 계획이다.
이처럼 국내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이 지속적으로 급등한다면 기업의 투자 계획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환율로 인해 원자재 수입 부담이 늘어나고 있지만 제품 수출 확대를 통해 수익성을 보존할 방침"이라며 “아직까지 환율 변동에 대한 영향은 크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