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못 땡겨 큰일이네”…‘에너지 효율 리모델링’ 놓고 고민빠진 유럽 은행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5.20 12:11
태양광

▲근로자들이 태양광 패널을 지붕에 설치하고 있다(사진=AP/연합)

주택을 포함해 건축분야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유럽연합(EU)의 새로운 환경지침이 시행되자 유럽계 은행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규제 가이드라인을 충족하지 못하는 주택은 시장 매물로 내놓을 수 없어 리모델링을 통한 에너지 효율성 제고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주택담보대출 등에 허덕이는 집주인 대부분이 리모델링 자금을 추가로 조달할 의지나 여력이 없고, 은행들 또한 리모델링을 강요할 수 없다보니 담보물을 회수하는 가능성에 대한 마땅한 대책을 못 세우는 상황이다.




20일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2030년까지 건축분야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을 2015년 대비 최소 60% 이상 절감하고 2050년엔 탄소중립 달성을 골자로 하는 건물 에너지 성능지침(EPBD) 개정안이 지난달 12일 승인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각 회원국은 주택용 건물의 1차 에너지 평균 소비량을 2030년에 16%, 2035년에 20~22% 감축해야 한다. 또 에너지 효율이 낮은 주택의 경우 리모델링을 통해 에너지 소비량을 최소 55% 감축시키는 것이 의무화됐다.



EU 집행위는 “EPBD는 유럽 모든 주택들이 냉난방을 위한 화석연료 사용을 단계적으로 폐지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U는 내년 1월부터 화석연료 보일러에 대한 보조금을 중단한다.


EU 집행위는 또 EPBD의 일환으로 주택의 냉난방 에너지 효율성 등을 평가하는 에너지 성능 인증서(EPC) 제도를 활성화했다. 매매·임대용 주택 매물이 시장에 등록될 경우 EPC도 반드시 포함돼야 하며 이는 임대 또는 매매 계약 시 동시에 전가된다.




그러나 유럽 가구들은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한 리모델링에 선뜻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집주인들은 리모델링을 위해 추가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그 금액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독일 부동산시장에 1575억유로(약 232조원) 규모의 익스포져를 보유한 도이체방크는 EPBD 지침에 준수하기 위한 각 주택의 리모델링 비용이 10만유로(약 1억 4700만원)가 넘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도이체방크의 모든 주거용 대출 고객들에게 800억유로(약 118조 14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추가로 부담되는 셈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리모델링에 나설 여력이 없는 가구들도 존재한다. 도이체방크는 현재 부동산 대출 고객의 3분의 1은 주택을 리모델링할 재정적 수단이 없는 것으로 추산했다.


도이체방크의 토비아스 혼 포트폴리오 관리 총괄은 “고객들이 에너지 효율 제고에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거나 그럴 여력이 없더라도 은행은 강제로 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DEUTSCHEBANK-PROFIT/POSTBANK

▲도이체방크 로고(사진=로이터/연합)

문제는 리모델링을 하지 않을 경우 시장 매물로 등록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블룸버느는 “에너지 효율 제고에 너무 뒤쳐지는 부동산 소유자들은 더 이상 팔거나 임대할 수 없는 자산을 떠안게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주택담보대출에 익스포져가 높은 은행들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독일 분데스방크는 집주인들이 리모델링에 나서지 않을 경우 부동산 가치가 상당한 타격을 입어 경제 전반에 연쇄적인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의 성장엔진인 독일은 주택 리모델링이 시급한 국가로 지목된다. 도이체방크는 독일의 전체 주택 중 67% 가량은 1979년 이전에 건축돼 에너지 효율성 지침 등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ING그룹은 독일에서 EPBD를 충족시키기 위해 향후 10년 동안 60% 이상의 주택이 리모델링을 거쳐야 하고 이 과정에서 최대 1조유로(약 1476조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유럽 다른 지역에서도 은행들의 부동산 포트폴리오가 리모델링에 따른 리스크에 직면하는 추이라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유럽에서 전체 주택 중 85%는 2000년 이전에 완공됐고 75%는 에너지 효율성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채무자들이 소유한 주택을 탄소중립으로 만들지 않기로 선택할 경우 담보물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동시에 리모델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대출을 더 늘리는 채무자들도 있다며 이들은 부정적인 충격에 더 취약해졌다고 꼬집었다.


영국의 로이드 뱅킹 그룹도 영국 집주인 절반 가량은 높은 초기비용으로 인해 리모델링을 주저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드 뱅킹 그룹은 영국에서 3000억파운드(약 517조원)를 넘는 주택담보대출을 관리한다.


이와 관련 ING의 카스텐 브르제스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주택을 환경 지침에 준수하게 만들기 위한 돈이 유럽 전체 지역에서 충분하지 않다"며 “집주인에게 리모델링을 강요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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